[@뉴스룸/이승건]북한 응원단 응대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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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10년이 넘었지만 생생한 장면이 있다. 2003년 8월 28일의 일이다.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이 버스로 이동하다 내려 길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떼어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있어서였다. 당시 본보 기사에 따르면 그들은 “장군님 사진이 방치돼 있다. 비라도 맞으면 불경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한 듯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 대회는 북한을 위한 잔치였다. 북한은 그해 국내 8·15행사에서 보수단체가 인공기를 훼손했다는 것을 빌미로 대회 불참을 시사하고 남북 접촉 일정을 무산시켰다.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유감 표명을 한 뒤에야 다시 참가 의사를 통보했다. 개막 후에도 북한은 보수단체의 시위 등을 트집 잡아 남은 일정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때마다 조직위는 쩔쩔맸다.

300명 넘게 몰려온 북한의 소위 ‘미녀 응원단’은 대회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국내외 언론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그들이 등장한 경기장은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우리 정부는 북한 선수 및 응원단 약 500명의 체류 비용 9억 원을 모두 부담하고도 돌출행동을 일삼는 그들의 비위를 모두 맞춰줘야 했다. 스타도 그런 스타가 없었다.

올해도 북한은 다음 달 19일 개막하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역대 최대 규모인 700명(선수단, 응원단 각 350명)을 보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지원 범위(돈)를 놓고 남측과 의견이 갈리자 지난달 17일 열기로 했던 1차 실무접촉은 결렬됐다. 북한은 이번에도 “대회 참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 북한은 참가할 것이다. 그게 ‘남는 장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북한의 요구대로 700명의 체류비용을 모두 부담한다고 해도 10억∼15억 원 정도다. 연간 1조 원 이상의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갖고 있는 우리 경제 능력으로 볼 때 큰 액수는 아니다. 남북 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억 원인들 아깝겠는가. 하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2003년 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 등 북한 응원단이 참가한 3차례 대회에서 한국 정부는 돈만 대주고 얻은 건 별로 없었다. 일부에서는 “돈 몇 푼 때문에 북한과 소모전을 벌이지 말라”고 하지만 중요한 건 돈의 액수가 아니라 북한의 태도다.

아시아경기는 선수들이 4년 동안 땀과 눈물을 흘리며 기다려 온 이벤트다. 특히 국내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누구보다 절박하게 대회를 기다려 왔다. 주인공은 당연히 각국의 선수들이어야 한다. 그 선수들을 볼모로 대회에 참가를 하네 마네 하는 것부터가 스포츠를 얄팍한 정치 수단으로 여긴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대회 참가는 환영한다. 실망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응원단은 안 와도 그만이다. ‘주객전도’ 노림수가 뻔히 보이는데도 또 놀아날까 걱정이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북한#인천 아시아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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