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덕 前 통일장관 - 정종욱 前 주중대사 ‘韓中 정상회담 결산’ 방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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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국 가치 더 커져… 선택-집중으로 외교이익 챙겨야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정종욱 전 주중대사가 4일 서울 광화문 인근 동아일보 사옥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평가하고 동북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정종욱 전 주중대사가 4일 서울 광화문 인근 동아일보 사옥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평가하고 동북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앞으로 검토해야 할 ‘미세(微細) 외교’는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과 정종욱 전 주중대사(인천대 석좌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한중정상회담 이후의 과제를 제시했다. 한미일 삼각공조와 한 중 협력의 틈새에서 실무 현안에 집중해 전략적 이익을 챙기는 외교적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강 전 장관과 정 전 대사는 특히 한중 정상이 일본의 우경화 노선에 한목소리를 내면서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미국과의 동맹 이완 현상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다양한 통로로 한중 관계는 한미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점을 미국에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북-일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은 미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일 관계 개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역사 문제와 외교안보 사안을 구분하는 ‘투 트랙(이중 접근)’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두 전문가의 방담은 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 사옥 6층 회의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방담이 끝난 이후에 한중 정상이 일본의 우경화에 한목소리로 경고했다는 소식이 공개돼 6일 별도의 전화 인터뷰로 보완했다.

○ “현재 한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일본”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북-일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너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본이 북-일 간 핫라인을 개설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화(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에 국한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핫라인을 통해) 독자적인 안전보장 문제나 안보·군사 문제로까지 진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3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일본 역사 왜곡 등에 대한 수위 높은 비난이 4일 나온 것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대학 강연과 특별 오찬이라는 형식을 빌려 두 정상이 그런 발언을 했다고 미국이 문제 삼을 리 없다.

▽정종욱 전 주중대사=우려할 부분은 북한의 오판이다.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 후 북-중 간 돌파구를 마련하려 해도 북-일 접촉이 활성화될수록 북한 내 분위기는 중국을 도외시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그런 측면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5월에 일본을 방문해 다수의 일본 지식인과 풀뿌리 단체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 한일 관계 악화를 한목소리로 걱정했다. 일본 내 친한파의 입을 막는 방향으로 사태를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대북 협력 등 외교안보 문제와 역사문제를 구분해 투 트랙으로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지만 일본과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현 한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일본 아닌가.

○ 지금이 미세외교 활용의 최적기

▽정=동의한다. 아시아태평양의 거시적인 질서는 이미 주요 강대국들이 짰다고 본다. 그런 틀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세 외교’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관계에서 고민하는 대신 양국 간에 존재하는 미중 협력 공간을 파고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이를 확대해 주고 일본도 기여하면 동아시아 평화협력 실현 과정에 우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과거 중국에서도 ‘저우언라이(周恩來)판’ 정책이 미세외교의 한 유형이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이 큰 전략적인 구도를 정하면 저우 총리가 미세한 부분을 조정했고, 이를 통해 내용이 달라지는 상황이 가능했다. 문화혁명 때도 저우 총리는 마오의 생각을 정면으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디테일(세부사항) 조정을 통해 문화혁명 충격을 완화시켰다.

▽강=우리가 반도국 이니셔티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시 주석은 국제적인 리더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

○ 한중 정상회담이 북한에 준 충격

▽강=시 주석 방한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지위가 격상됐다고 본다. 그동안 분단 상황으로 제한적이던 우리의 위상이 더 커졌다. 북한이 그만큼 더 소외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시 주석이 권력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신형 대국 관계 및 주변국 외교에 대한 큰 틀을 다 짠 뒤 방문한 첫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시 주석의 핵심 브레인이자 대북책사인 왕후닝(王호寧)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등도 함께 방한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단순히 주변국 외교 차원이 아닌 큰 틀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강=그런 면에서 이번 방중이 북한에 큰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명확한 답도 이번에 나왔다. 북한의 (경제와 핵을 함께 추구하는) 병진노선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정=중국 지도층 내부에서 북-중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두고 상당한 토론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심도 있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 수 있지만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 자주평화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해 왔다. 한국 주도의 흡수통일을 반대한다는 의미인데,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자주’라는 표현이 빠졌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향후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대해 박 대통령과 논의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강=중국은 김정은 정권 내부가 상당히 불안하게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얼마 전 중국 외교가의 지인을 만났는데 내게 “강 선생은 북한의 영변 핵 실험장에서 250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 않나. 그러나 우리(중국)는 직선거리로 50km 안에 산다. 핵이 터지면 우리가 더 위험하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더라. 중국 역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 “북-중 및 남북 관계 돌파구 열릴 수도….”

▽정=장성택 사건 이후 북-중 대화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상황을 이대로만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조만간 북한에 고위급 인사를 보낼 가능성도 있다.

▽강=
올해 북한에 비가 거의 안 왔다. 가을 추수 상황이 걱정이다. 우리는 오늘이라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중국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능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대북 관계에서 올해 안에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김정은이 도발을 계속한다면 본격적인 중국의 제재 조치가 가동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변함없이 주장하는 것이 시장 도입이다. 중국이 북한 정부와 약속한 인프라 건설 등은 하겠지만 실질적인 대북 투자는 결국 중국 민간의 몫이 아닌가. 중국은 북한에서의 이런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둘 것이고 그런 압력이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다.

▽정=저 역시 그게 바로 시 주석 대북 정책의 핵심이라고 본다. 민간이 국가 부문보다 커지는 이양과정을 거친 중국은 북한에도 이를 주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 대해 협력할 수 있는 한중 양국의 공간이 더 넓어지리라고 본다.

○ 한반도 급변사태도 논의하는 관계로….

▽정=시 주석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올라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한중 관계에서 올라야 할 단계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강=맞는 말이다. 해양경계획정 문제는 노골적으로 할 이야기는 하면서 협상해야 한다. 불법 조업 현장에는 중국 배들이 선단을 만들어 온다고 들었다. 전쟁터 같다고 한다. 한중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협상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 중국 내 탈북자 문제도 보다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정=한중 관계 강화에 대한 미국 측 의구심을 풀어주는 외교적 노력도 있어야 한다. 최근 고노(河野) 담화 문제를 두고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대미 홍보에 나섰고 성공했다. 미중 양국 간 한반도 급변 사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한중 간에도 그런 긴밀한 대화가 오가야 한다.


:: 약력 ::

▽정종욱 전 주중대사


△1940년 경남 거창 출생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김영삼 정부) △주중 대사(1996∼98년) △현 인천대 석좌교수

▽강인덕 전 통일장관

△1932년 평남 평양 출생 △경희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중앙정보부 국장(1971∼78년)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 △통일부 장관(김대중 정부) △현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통일 및 북한분야 자문위원

정리=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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