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외압설 둘러싼 ‘공영방송 KBS’의 막장드라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0일 03시 00분


어제 KBS 기자들은 ‘청와대 외압설’과 관련해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을 거부해 일부 보도프로그램이 파행 방송됐다. KBS 부장단 18명은 이미 총사퇴 의사를 밝혔고 야당 추천 KBS 이사들은 21일 열릴 이사회에 ‘사장 해임 제청안’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길 사장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청와대 외압 주장이 과장 왜곡됐다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압에 맞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켜야 할 KBS 사장과 전 보도국장이 내부에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 자체가 KBS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일이다.

청와대가 KBS의 보도와 인사에 개입했다면 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KBS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송 장악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신문을 비롯해 다른 언론이 일제히 질타한 해경의 문제점을 대통령비서실에서 축소해 보도하라고 KBS를 압박했다면, 권력에 의한 방송 왜곡이 자행돼 왔다는 의미다. 김 전 국장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면 청와대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KBS 구성원들이 방송편성과 편집의 최종 책임을 지는 사장의 역할을 ‘부당한 간섭’으로 여기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길 사장은 어제 “노조가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시도한다”며 “좌파 노조에 의해 방송이 장악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를 청와대가 개입해선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조 역시 좌지우지해선 안 될 일이다.

KBS는 한국의 대표 방송이자 국가 재난 주간 방송사다. 국가적 재난이 닥치면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지금까지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코드에 맞춘 낙하산 인사와 노조의 이념 편향적 투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 속에 KBS의 ‘재난 드라마’를 봐야 하는 시청자는 수신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KBS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KBS 기자#길환영#사장 해임 제청안#청와대 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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