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경의 ‘셀프 수사’로 세월호 진상 밝힐 수 있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9일 03시 00분


부산해경에 소속된 경찰관이 한국선급에 압수수색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압수수색 당일 한국선급 직원들의 메모는 깨끗이 지워져 있었고, 한 간부는 휴대전화까지 바꿨다. 선박의 안전 점검을 담당하는 한국선급은 세월호 증축과 검사 과정에 불법이 없었는지 수사를 받는 중이다. 수사 대상에게 수사 정보를 알려줬다니 ‘피의자와 한통속’이나 마찬가지다. 1일에는 해경의 핵심 보직인 정보수사국장이 세월호가 소속된 청해진해운의 전신이었던 세모그룹에서 근무했음이 드러났다. 해경이 이번 사건의 수사를 위해 구성된 검경합동수사본부에 참여해도 되는지 심각한 의문이 생긴다.

해경은 구조자 수를 어제 174명에서 172명으로 줄여 발표했다. 사고 발생 이후 일곱 번째 수정이다. 해경은 지난달 23일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2주일 이상 국민을 속였다. 제주해경의 한 경감은 이 와중에 골프를 쳤다가 문제가 되자 “비번일인 데다 계급이 낮아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변명을 하다가 직위해제를 당했다. 함포사격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확보해놓은 부지에 145억 원 들여 골프장을 조성한 해경이다.

세월호 침몰 직전에 수백 명이 선실에 갇힌 상황에서 해경은 이들을 구할 생각은 않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구조활동을 부풀려 보고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대부분의 승객이 구조되고 있다고 상황을 오판하게 만든 것이다. 희생 학생들의 휴대전화 메모리카드를 유가족 동의 없이 먼저 들여다봤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인터넷에서는 “해경이 또 뭘 숨기려고 그런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해경은 사건 초기부터 무능과 무책임, 전문성 부족을 드러냈다. 경무관 이상 고위간부 14명 중 대부분이 경비함정 근무 경력이 없다. 1996년 경찰에서 독립한 후 13명의 해경청장이 부임했는데 11명이 육경(陸警·일반 경찰) 출신 낙하산이었다. 바다를 모르는 간부들이 해양구조를 지휘하고 있다.

해경 조직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을 단속할 필요성에 따라 최근 10년간 두 배로 커졌지만 4개 지방경찰청을 만들며 간부자리 늘리는 데만 급급했다. 단속과 수사 분야는 강화했으나 해상구조는 소홀히 취급해 전담인력이 200여 명에 불과하다. 해양수산부 산하이지만 해수부로부터 인사와 관리감독을 받지 않고, 일반 경찰과도 동떨어진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구조도 문제다. 해경을 전면 해체하는 수준으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세월호#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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