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선장을 벌하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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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두렵다. 직업윤리, 기업규제, 관료개혁, 국가개조까지 모든 이슈가 세월호라는 용광로에서 끓고 있지만 얼마 뒤 우리 사회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까 봐 두렵다.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서로 지켜줄 수 있는 사회. 그거 하나만이라도 건져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전규찬 교수가 기자에게 보내온 글을 문답 형식으로 소개한다. 전 교수는 케임브리지대를 나와 심리학, 사회학, 공학, 디자인과 연계한 환자들의 안전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누구를 어떻게 처벌해야 해결되나.

“선장, 회사, 정부의 잘못을 따지고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희생양 찾기’에 그치면 시간이 흐른 뒤 망각하고, 비슷한 사고가 재발한다. 사고의 원인은 개인의 실수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 요소들(조직문화, 회사의 경영방침, 정책, 법규 등)과 관련돼 있다. 개인에게 정당한 책임을 묻되 전체 시스템의 개선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사고가 되풀이되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영국 정부의 의료안전 보고서 제목은 ‘기억력 있는 조직’이었다. 사고의 앞뒤 상황이 지속적으로 수집돼 현업에 전달되고 현장에선 이를 학습하는 메커니즘을 정착시켜야 한다. 영국은 의료사고를 쉽게 보고하고 학습해 재발을 막기 위해 국립환자안전청(NPSA)을 만들었다.”

―시스템은 있지만 작동을 안 하는 게 문제 아닌가.

“에리크 홀나겔 덴마크남부대 교수는 사람들이 안전규정을 계속 무시하는 이유가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심지어 더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안전규정을 지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의료 분야는 너무 많은 안전규정이 있어 이를 무시하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도 안전규정을 철저히 지키며 하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시스템을 보완해도 소용없다는 것 아닌가.

“안전사고는 매우 복잡한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이를 막으려면 인간, 사회, 기술에 대한 융합적인 연구와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전 시스템은 잘해놓아도 티가 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기거나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 단기 실적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선 안전이 보장되기 어렵다. 그래서 안전이라는 문제는 명확한 목표, 인내, 헌신 없이 추구하기 어렵다.”

―명확한 목표, 인내와 헌신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1989년 영국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사고의 사례를 들겠다.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힐즈버러 가족지원모임(HFSG) 등의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엔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는 데 주력했지만 나중엔 대중이 사고를 기억하고 안전의식을 높이도록 기여했다. 매년 4월 중순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경기장에선 경기 시작 전 1분 동안 선수와 관중이 함께 힐즈버러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한다. 희생을 기억하고, 안전을 다짐하는 의미의 이 행사는 그냥 시작된 게 아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헌신적 지속적으로 요청한 끝에 사고 10년 만에 도입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일상으로 돌아온 뒤 우리 사회가 변함없이 인내하고 헌신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뭐가 좋아졌는지 알아내기도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 중단 없는 성장가도와는 사뭇 다른 길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마지막 희망을 잃게 될 것이다.

▶ 기사보기 - [전문] 전규찬 교수가 보내온 글 ‘시스템 안전과 세월호’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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