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기념사진과 기록사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성호 사회부 기자
이성호 사회부 기자
한국인들의 사진 사랑은 유별나다. 놀이동산이나 관광지에 가면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비장한 각오가 담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값비싼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풍경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너도나도 사진작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특히나 사진 촬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무원들이다. 회의실에서, 행사장에서 사진 촬영은 빠지지 않는 통과의례다. 공무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는 것은 기록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기념과 기록의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명목상 기록이지만 실제 내용은 기념인 경우도 많다.

2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안전행정부 고위 공무원의 ‘기념사진’ 촬영 논란이 벌어졌을 때 처음에는 의아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태연히 사진을 찍었다. 물론 그가 진짜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인지, 아니면 현장 활동을 기록하려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당시 극도로 예민했던 실종자 가족들의 상태를 감안할 때 어떤 목적의 사진이었든 부적절했던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도 공무원들의 기념촬영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7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직할 때였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행사를 열었다. 문제는 행사 말미에 발생했다. 당시 행사장에는 이 전 대통령의 가족이 참석했는데 자신의 아들을 불러 히딩크 감독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게다가 사진을 찍은 아들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한 것은 충분히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무 관련이 없는 시장의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까지 기록으로 보기는 어렵다.

2002년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정부 부처 홈페이지의 ‘포토뉴스’ 난에는 온통 장관의 사진만 가득하다. 현장 행보에 나선 장관들이 ‘○○○ 장관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 아래 기념사진을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지방자치단체로 눈을 돌리면 더욱 심하다. 공직자 사진 촬영에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한 지자체의 사진 담당 공무원은 “사실 사진 홍보에 특별한 매뉴얼은 없다. 그저 단체장의 동정에 철저히 맞출 뿐”이라고 말했다.

아마 이번 안행부 공무원의 ‘물의’ 탓에 앞으로 각종 현장에서 공무원들은 한층 몸을 사릴 것이다. 그렇다고 기록을 남기기 위한 사진 촬영까지 그만두면 안 된다. 정부의 부실한 초기 대응, 아무런 도움 없이 방치된 가족들, 협업은커녕 혼선만 빚는 공무원 등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모든 일을 반드시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직무유기다.

이성호 사회부 기자 starsky@donga.com
#사진#기념사진#기록사진#목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