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 못 믿는 나라에서 ‘금융의 삼성전자’ 나올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국내 금융업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은행 보험 증권 카드 캐피털회사 등 금융권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비리(非理)와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출 사기, 부실 대출, 고객정보 유출, 서류 위조 등 종류도 가지각색인 ‘비리의 복마전’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해외발(發) 충격이었지만 이번 파문은 ‘안으로부터의 신뢰 위기’여서 더 충격적이다.

고객이 맡긴 돈을 다루는 금융업은 무엇보다 신용과 투명성,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계에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는커녕 전형적 고임금 저효율 구조로 개편되면서 이자와 수수료 수익 등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으로 편하게 돈을 벌었다. 노동생산성은 2년 연속 떨어졌는데도 시중은행 직원의 23%가 1억 원 넘는 연봉을 받고 있다. 임직원의 윤리의식은 땅에 떨어졌고 내부통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등 모럴 해저드가 심각하다.

이번 국내발 금융위기는 1차적으로 해당 금융회사와 임직원의 잘못이지만 금융당국의 책임도 무겁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4대 금융지주사에 대한 정기·비정기 검사에서 160건의 위법 사항을 적발하고도 기관 징계는 12건의 경징계만 하고 말았다. 금감원 직원들이 금융업체와 유착해 뇌물을 받는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모피아(재무부+마피아)’에 이어 ‘금피아(금감원+마피아)’가 금융권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와 서로 봐주는 관치(官治)금융 관행은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어제 10개 시중은행장을 소집해 “앞으로 금융사가 내부통제에 무관심해 금융 사고를 내면 경영진과 감사의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과거 자주 봤던 ‘일회성 이벤트’가 안 되려면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내일은 금감원에서 부실 저축은행 투자 책임이 있는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날이다. 강도 높은 징계조치를 내려 금융업계가 정신이 버쩍 들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금융권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에선 ‘금융의 삼성전자’는 꿈도 꿀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