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윤동]손발 묶인 대한민국 대공수사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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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동 덕우회(전직 대공수사관 모임) 사무국장
김윤동 덕우회(전직 대공수사관 모임) 사무국장
간첩을 잡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우선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가끔은 목숨을 내놓고 간첩과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중국에서의 활동은 특히 위험하다. 북-중 접경지역은 북한 보위부원들이 안방처럼 드나드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의 간첩 수사는 총성만 없을 뿐 북 보위부와의 전쟁이라고 보면 된다.

한중 관계가 개선됐다지만 중국은 여전히 북한과 동맹이고,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는 60년간 혈맹 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대공수사관이 중국에 나가면 언제 잡혀갈지 무서워 한동안 잠을 못 잔다”고 한 국가정보원 직원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국내에서의 수사가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일반화돼 있는 간첩 휴대전화 감청조차 못한다. 법에 통신업자의 감청장비 의무규정이 없어 영장을 받아도 휴대전화 감청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간첩 원정화는 이런 허점을 이용해 난수표가 아닌 휴대전화로 직접 북한의 지령을 수신했다. 왕재산 수사 때는 법원의 감청허가서를 받았는데도 통신사 설비가 없어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류자강 사건의 경우 휴대전화 감청만 됐어도 굳이 중국 협조자를 통해 어렵게 증거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달라진 북의 간첩 남파 전술도 골칫거리다. 북한은 간첩을 탈북자로 위장해 내려보낸다. 위장 탈북자가 합동신문센터에서만 걸리지 않으면 중국을 통해 수시로 북한을 들락거려도 간첩인지 아닌지 현재로선 가리기 어렵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잡힌 위장 탈북자 간첩은 10여 명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간첩을 잡더라도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짓기까지는 더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처음에 북에서 받은 지령을 털어놓던 간첩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만 붙으면 태도가 돌변한다. 갑자기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진술을 번복하고, 폭행과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2011년 왕재산 사건 관련자들이 그랬고, 2013년 류자강 동생 유가려가 그랬으며, 3월 27일 북한 보위부 공작원 홍모 씨가 그랬다.

최근에는 법원도 확실한 증거가 아니면 간첩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류자강 사건 1심 재판부도 동생의 자백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지만 진술 번복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정도라면 북한 입장에서는 위장 탈북자가 발각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민변의 도움을 받아 무죄 판결을 받거나, 유죄라도 3∼5년 감옥에서 보내면 합법 신분의 간첩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대공수사 상황이 이렇다. 마치 양손이 묶인 권투선수가 링 위에 올라 싸우는 꼴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대공수사 요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대공수사요원들의 손발이 묶이고 자긍심이 무너지면 우리의 대북 전선은 큰 구멍이 뚫리게 되고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

김윤동 덕우회(전직 대공수사관 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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