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의료 국제화’야말로 신성장 동력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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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국제의료센터를 찾은 러시아 여성이 검진을 받고 있다. 국내의 높은 의료 수준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만 외국인 20만 명이 한국을찾았다. 동아일보DB
인천의 한 국제의료센터를 찾은 러시아 여성이 검진을 받고 있다. 국내의 높은 의료 수준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만 외국인 20만 명이 한국을찾았다.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료 분야가 다음 세대에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료계가 과연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그동안 국내 의료기술은 의료인들의 열성과 노력 덕분에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의료의 ‘국제화’와 ‘산업화’가 꽉 막힌 경제 전망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왔다.

대한민국의 수준 높은 의료기술과 서비스는 해외 환자들에게까지 많이 알려져 지난해 20만 명 이상(정부 추정)이 국내 병원을 찾았다. 더불어 중국 동포나 동남아시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재능기부 형태의 의료봉사 활동도 늘었다. 이런 활동은 해외 환자들이 대한민국 의료를 더 신뢰하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국제화’와 ‘의료관광’이 유사한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관광 개념이 많이 부각되고 있는데, 태국과 싱가포르 모델이 항상 벤치마킹 대상이 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모델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두 나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활성화된 관광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언어 역시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다. 여행하러 왔다가 치료도 하고 가는 게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의료와 융합할 관광 요소가 아직은 신통치 않다.

두 나라에서는 의료진 외에 직원 인건비가 저렴하다. 또 대부분의 병원이 국가와 민간의 합작 투자자본이 병원을 운영하는 영리병원이다. 경영진은 미국 유명 대학 출신의 경영전문가들이다. 우리와 의료시스템이 많이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강점이 있다. 그것은 의료기술 수준만 놓고 보면 우리가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순수 의료기술로 승부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고품격 의료수출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국내로 환자를 유치할 때나 해외로 우리가 진출할 때 꼭 필요한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 의료의 메뉴를 특화하고, 관련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메뉴 선정과 홍보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집에서 집까지(door to door)’ 환자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규제로 여겨지는 제도는 정비해야 한다.

사실 모든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환자 관리시스템만 해도 △의료진 사전상담 △이동수단 △숙박 △비자 △관광 △여행사 △보험회사 △결제시스템 △식사 △종교 편의 △각종 편의시설 △의료용품 △퇴원 후 추적 연계 △언어 도움 △환자보호자 관리 △해외 환자 의료수가 △의료통역직원 질 관리 △국가별 고객 응대 매뉴얼 차별화 등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완해야 할 제도만 해도 △비자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외국인 병상 비율 규제 완화 △국제병원 자격 완화 △여행사 자격 요건 △의료소송 관련 법규 정비 △의료인의 면허 요건 △의료배상보험 가입 규정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의료산업화를 위해 정말로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또 있다. 우리가 정말로 해외 환자들의 바람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①의료정보가 그들 입장에서 구체적인지 ②입국이 편안한지 ③진단과 치료가 잘되고 있는지 ④환자와 보호자의 체류에 불편함은 없는지 ⑤진료비 청구 절차는 번거롭지 않은지 ⑥휴양이나 관광 등 의료 이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지 ⑦귀국은 편안한지 ⑧귀국 후 현지 병원과의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는지 ⑨원격 의료서비스 등 온라인 소통이 잘되고 있는지 ⑩사망이나 소송 등에 대한 처리 절차는 마련됐는지 등을 늘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의료산업이 비즈니스 모델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중국에 검진시스템을 구축한 뒤 관리운용비를 받았거나 아랍에미리트에 병원을 건립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심장 분야 의료시스템을 통합해 달라는 의뢰가 있었다. 하지만 미미한 상황이다.

하지만 서서히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 아쉬웠던 부분도 하나씩 보강되고 있다. 이제 큰 성과를 내려면 의료 관련 기관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을 상대로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업을 계획할 때는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득실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정부-의료계의 공감대가 조금씩 싹트고 있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가시적인 성과들이 눈에 띄고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홀딩 컴퍼니를 구축하고, 메디컬 리조트를 활성화하며 해외 환자 관리 코디네이터 양성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의료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의 메카’라는 한국의 의료 ‘국격’이 추락해서는 안 된다. 의료산업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은 의료 공공성 강화에 쓰이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의료 한류’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개혁 3개년 계획이 끝날 때쯤 50만 해외 환자가 한국으로 들어오고 해외에 합작병원 두세 곳을 세우며 공공의료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누가 봐도 국익에 도움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료#국제화#산업화#의료기술#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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