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3대 비급여 개선안 정부 발표 이후의 숙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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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형병원 1인실 모습. 병원은 수익을 위해 1, 2인실 사용을 독려하지만 환자들은 비용 때문에 다인실을 선호해 수급이 잘 맞지 않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 대형병원 1인실 모습. 병원은 수익을 위해 1, 2인실 사용을 독려하지만 환자들은 비용 때문에 다인실을 선호해 수급이 잘 맞지 않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선택진료비(특진비), 상급병실료 차액, 간병비 등 3대 비급여(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 분야) 개선에 관한 정부안이 발표되었다.

정부안의 골자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로 인한 환자 부담을 2017년까지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완화시키고, 재원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하되 의료의 질 지표를 고려한 병원 보상 방안을 함께 강구하고 간병은 포괄적 간호서비스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일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실제로 이를 반기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환자단체, 의사, 병원, 여야 등 입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가령 정부안에 들어있는 ‘2017년 이후 시행할 전문 진료의사 가산제도(가칭)’가 그런 사례다. 이는 전문 진료의사를 지정하면 특진비의 50%는 본인이, 50%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내도록 한 제도다. 이에 대해 정부와 병원계는 “의료의 품질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평한다. 하지만 환자단체와 야당은 “선택진료 제도의 폐지라는 목적과 어긋나며 오히려 선택진료제도 부활을 위한 꼼수가 될 우려가 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그래도 정부가 과거의 불통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 현 시점을 굳이 비유하자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막 켜고 출발지 좌표를 찍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대안 제시나 논란의 단계를 벗어나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마련하고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함께 들르기로 한 중간 경유지(상호 간의 약속)는 반드시 경유해야 하고 엉뚱한 길로 가서도 안 된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①환자와 단체 측은 일단 ‘무한요구 모드’를 당분간만이라도 좋으니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②의료 제공자(병·의원)는 정부와 협력해 보상 방안을 구체화하고 의료의 품질 향상에 매진해야 한다. ③정부는 재원을 확보하고 병원에 대해서도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보장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목표의 달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령 재정 분야를 보자.

정부는 소요예산과 재원조달 방안이 마련됐다고 밝혔다.(2014년 5600억 원, 2015∼2017년 매년 평균 3600억 원, 누적 4조6000억 원 소요) 그 때문에 2014년도는 추가 인상 없이 추진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 이후에는 보험료 부과 기반 확충,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적 관리 등을 통하여 보험료 인상을 최대한 억제할 것이며 부득이한 경우 1% 정도만 보험료를 인상하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재정 계획이 별 탈 없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던진 화두에 대해 환자와 의료계의 답도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먼저 환자의 이야기다.

①선택진료 의사 축소와 선택진료비 부담 완화는 환영하지만 환자의 의사 선택권 위축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②혹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 좋은 의사를 선택하는 게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 ③의료기관의 의사와 기관 평가 결과가 공개되어야 하지 않겠나. ④상급병실과 관련해 기준병상은 최소한 80%는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 ⑤기준병실(일반병실) 환경을 개선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병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야 하지 않겠나.

병원과 의료계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①건강보험 수가가 턱없이 낮은 상황에서 병원 경영이 더 어려워지거나 파탄 날 수도 있다. ②병·의원 보상을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원규모 및 조달방안이 필요하다. ③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려 중소규모 병원이 어려워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④의사에 대한 환자의 실질적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병원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⑥보상과 연계하려면 의료기관 질 평가 기준의 확립이 필요하다.

이미 3대 비급여 제도 개선이란 이름의 버스는 출발했다. 그러니 환자와 병원·의사, 정부가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장 풀어야 할 숙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 정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의료계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이다. 의료계도 파업 등의 극단적인 형태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버스에 함께 타고 공동의 최선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소통을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를테면 선택진료비 제도와 관련해서는 특히 ①건강보험 재정 여건을 고려해서 환자 부담을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②병원 경영 지속 가능성에 대한 보상 방법의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해야 하며 ③의료전달체계와 쏠림 현상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상급병실료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도 70%로 상향조정한 게 타당한지, 병상환경 표준화 기준을 마련하여 병실료는 적정한 수준으로 책정됐는지 등을 따져야 할 것이다. 간병비와 관련해서는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난 후 추후에 방향 설정이 가능하겠다. 후속 숙제만 잘 풀면 최종 목적지가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착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국민은 운전기사가 3명(환자, 의료기관, 정부)인 버스 한 대에 함께 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종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하려면 3명의 운전기사가 서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존경하고 신뢰해야 한다. 그래야 머지않은 미래에 서로가 최종 목적지를 공유하며 흔쾌히 운전대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하기 나름이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3대 비급여 개선안#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차액#간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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