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손봉호]‘커피 반 잔 값’ 수신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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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가 34년째 2500원으로 묶여 있다. 그동안 물가는 28% 올랐다. 기술 발전으로 방송시설을 현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신료로는 운영비의 40%도 충당하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빚을 내야 했다.

지난해 말에 차입금이 3000억 원이 넘었다. 그러나 계속 빚으로 운영할 수는 없다. 비용의 40%는 광고로 충당한다.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은 공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수신료로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수신료보다 광고료가 더 많다. 이것이 정상적이거나 합리적이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영방송 운영이 이렇게 광고에 의존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영국의 BBC는 KBS의 8.3배, 일본 NHK는 6.3배, 독일은 우리보다 무려 10.1배의 수신료를 받는다.

수신료보다 광고에 더 의존하다 보니 방송의 편성과 질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광고에 의존하는 상업방송과 경쟁해야 하고 광고주의 입맛에 맞추어 방송해야 한다. 재미만 있으면 시청자와 청소년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프로라도 황금시간대에 방송하고 수준 높은 교양프로는 한밤중으로 밀어낸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공영방송 제도를 둔 것인데 지금은 그 목적이 심하게 퇴색되고 있다. 국회가 수신료 인상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로 제시된 것 가운데 하나는 KBS가 공정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공정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당연히 공정해야 하고 공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KBS가 중립적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은 정치권이지 KBS 자체의 독특한 문화나 이념 때문이 아니다. KBS에 그런 문화가 형성되도록 정치권이 허용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이념적, 정치적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큼 중립적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여론조사를 해 보면 KBS가 모든 언론매체 가운데 영향력에서도 1위이고 신뢰도도 1위이다. 정치인들도 KBS를 즐겨 보고 국민들도 가장 많이 시청한다. 지나치게 편파적이었다면 신뢰도가 그렇게 높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정치권력보다 돈의 힘이 방송의 공정성을 더 크게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은 주기적인 선거, 다양하고 수많은 언론기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고 있다.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방송이 편향적이 되는 것은 양쪽에 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돈의 힘은 감시하기가 심히 어렵고 감시하는 기관이나 단체도 많지 않다. 독재정권에 의해 해직된 한 원로 언론인이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진 교수들 모임에서 “우리나라에는 국립 신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를 해직한 정치권력보다 그 언론인의 양심을 더 괴롭힌 것이 돈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바로 그가 원했던 국립신문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국립신문이 광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물론 KBS에 요구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독일 일본 등 세계 50여 개국이 운영하고 있는 공영방송 제도를 우리가 아예 없애버리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정상적인 운영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장 영향력이 큰 방송의 수신료가 커피숍 커피 반 잔 값 정도란 게 말이 되는가.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KBS#수신료#빚#광고#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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