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억]서울광장 구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억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김억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올해에도 서울시청 앞 아이스링크에 스케이트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 데이트하는 연인들, 외부 관광객들이 스케이트장과 주변 카페에서 구경하며 여유를 즐기도록 만든 것은 인상적인 도심광장의 역할이다.

삶의 질이 높아져 고층빌딩과 자동차들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고급스러운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진짜 글로벌 도시가 된 느낌도 든다. 미국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 광장 스케이트장과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 유니언 광장과 같은, 축제 분위기의 스케이트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야간에도 조명을 받으며 하루 3000명 이상이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주인공이 된 양 아이스링크로 걸어가던 필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평소에 지나칠 땐 몰랐는데 광장은 10차로 이상의 자동차도로로 분리되어 건너갈 엄두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광장 주변에는 각종 주정차 차량과 천막 스타일의 임시 시설로 광장과 아이스링크가 시각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어수선한 아이스링크 주변은 전시행사는 빨리빨리 열지만 디테일에는 무관심한 우리 의식수준을 반영한 듯하다. 스케이트장이 개장된 2004년 이후로 서울에는 디자인을 강조하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가 많았다. 3월 개관을 앞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한강세빛둥둥섬, 서울시 신청사 등 규모도 크고 비싼 건물들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청 앞 서울광장은 본연의 역할에 못 미치고 있다.

남산 자락을 내려와 명동과 연결되고 덕수궁과 숭례문, 청계천, 광화문으로 연결되는 서울광장은 감성적으로나 인지적으로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는 공간이어서 특별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

주목할 만한 경관이라고는 신청사 입구의 시민 서비스를 상징하는 양수인 작가의 왜소한 조각 ‘여보세요’와 덕수궁을 바라보는 소나무 몇 그루뿐이다. 90년의 역사가 담긴 구청사와 30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신청사는 광장을 멋지게 아우르지 못해 청사와 광장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광장은 역사적으로는 1987년 6월 항쟁시위와 2002년 월드컵 응원이 있었고, 가장 최근인 2013년에는 싸이의 유튜브 기록 기념공연도 열렸다. 1만3223m²(약 4000평) 면적에 간헐적으로 시민 서비스 관련 이벤트를 열기도 하지만 아이스링크와 샤워분수를 가동하는 시기 외에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세계적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은 서울시의 철학과 가치를 보여주는 광장 구현을 합의할 시기가 된 듯하다. 서울광장은 길게 조성된 차분한 보행공간인 청계천과는 달리 한곳에 에너지가 응집된 심장 같으면서도 두뇌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차분한 이성이 공존하는 광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중교통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의 다양한 공간과 연속되어야 한다. 지금같이 거대한 자동차도로로 분리되어 섬처럼 느껴져서는 안 되며 주변과 연속되어 친숙하고 공간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시청 쪽만 빼고 3면이 이미 교통물결에 둘러싸여 차로를 줄이거나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무공해 버스를 광장에 직접 연결해 친환경 철학을 홍보하는 동시에 광장에 많은 시민이 통행하도록 하면 어떨까.

새해에는 서울광장이 서울시민의 문화의식을 수용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같은 창조적 광장으로 다시 태어나길 빌어 본다.

김억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시청#아이스링크#스케이트장#서울광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