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안중근의 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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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중국식 발음은 ‘안중건’이다. 19일 중국 하얼빈((哈爾濱) 시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에서 쑨야오(孫堯) 헤이룽장(黑龍江) 성 부성장은 안 의사를 ‘안충건’이라고 불렀다. 현장에 있던 관영 신화(新華)통신 기자도 그랬다. ‘重’이 ‘무겁다’는 뜻일 때는 ‘중(zhong)’으로, ‘거듭하다’는 의미일 때는 ‘충(chong)’으로 발음한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백과사전에 안중근을 치면 첫 항목에 ‘重은 zhong으로 읽는다’고 돼 있다. 정부를 대신해 축사를 하러 온 부성장이나 중국을 대표하는 매체의 기자나 다들 안 의사에 대한 숙지가 덜 돼 있었다. 안중근보다는 개관식이 중요한 듯했다.

안 의사 기념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중국이 통 크게 화답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곳에 표지석을 세워달라고 하자 100여 m²짜리 기념관을 지어줬다. 이런 마당에 안 의사 이름을 잘못 말한들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다. 맞다. 기념관 건립, 참 고맙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감사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빙성(氷城) 하얼빈 시가 안중근에 주목한 건 2006년 제1회 한국주간 행사를 전후해서다. ‘안중근 마케팅’이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CJ 등 기업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낸 이후다. 하얼빈역 2층에 마련된 ‘역사(驛舍) 100년사’ 전시물에 황해도 해주 사람인 안 의사를 조선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 아닌 굳이 한국혁명전사라고 써 놓은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일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2009년에는 현지에서 열린 안 의사 의거 100주년 행사가 크게 축소됐고 2006년에는 민간 기업이 제작한 안 의사 동상이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표지석 설치 문제도 한국이 2006년부터 제기했지만 모른 체하고 있었다.

기류가 바뀐 계기는 2012년 일본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로 촉발된 중-일 갈등이다. 중국은 한국이 필요했다. 그해 한중수교 20주년 행사에는 1인자 등극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당시 국가부주석이 참석해 한국 정부를 감동시켰다. 기념관 건립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정부와 하얼빈 시가 한국의 청을 들어주면서 구조적이고 영속적인 형태로 일본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기념관 설립은 표면적으로 한중 모두에 밑질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며 한중일 3국의 화해와 공동 번영을 추구했던 사상가다. 동북아 평화유지군 창설 등 시대를 앞선 평화주의자였다. 중국은 이런 안 의사를 끌어내 격화될 대로 격화된 동북아 역사전쟁의 한복판에 세워놓았다. 당장 일본이 안 의사를 범죄자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반면 한국에선 기념관 설치로 그동안의 숙원이 풀렸고 박근혜 외교가 큰 성과를 거뒀다며 들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면 이면의 배경과 논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 역시 뭔가를 건설하고 자랑하는 데 더 익숙하다. 박 대통령에게도 부친의 친일 논란을 잠재우는 데 도움을 주는 기회다.

기념관을 평가절하하자는 게 아니다. 중국 정부 대표가 왜 안 의사의 이름조차 제대로 못 읽는지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안 의사가 그의 사상과 신념에 맞게 제대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안 의사가 살아 계셔서 지금의 상황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기념관 안에 있는 그의 흉상의 표정이 근엄하다 못해 불편해 보였다. 나만의 선입견은 아닐 것이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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