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진흡]또다시 ‘적과의 동침’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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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산업부 차장
송진흡 산업부 차장
2009년 6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부 지원금 100억 원을 받아 지능형 배터리 센서, 주차지원 시스템, 스마트 키에 들어가는 차량용 반도체를 함께 개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과거 국내 재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도체나 자동차 등 사업 분야 곳곳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삼성과 현대가 ‘적과의 동침’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두 회사는 이듬해 10월 관련 기술 개발을 마무리했다. 주차지원 시스템과 지능형 배터리 센서용 반도체는 상업용 생산으로 이어졌다. 거기까지였다. 두 회사는 그때 이후 더이상 손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적으로 차량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면 외국 업체에 손을 내밀었다.

현대차는 2012년 4월 차량용 반도체 전문기업인 현대오트론을 세웠다. 이달 초에는 미국 구글과 GM, 독일 아우디, 일본 혼다 등과 미래형 스마트 카 개발을 위한 ‘열린자동차연합(OAA)’을 결성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이재용 부회장이 BMW, 폴크스바겐, 르노, 포드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 최고경영자와 잇달아 만나 사업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차량용 정보기술(IT)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다시 ‘동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두 회사가 이미 독자적으로 차량용 IT 사업을 벌이는 데다 외국 업체와 맺은 제휴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라이벌 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현대차는 삼성이 다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드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삼성은 현대차가 차량용 반도체 회사를 세운 것에 주목하는 등 미묘한 경쟁의식 때문에 서로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며 “외국업체들도 앞다퉈 협력 파트너로 삼으려는 두 회사가 손을 잡으면 시너지가 클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달 7∼10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4’에서는 IT와 접목한 자동차인 스마트 카가 주목받았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행사장을 방문하자마자 자동차 전시관부터 찾을 정도였다. 기존 자동차나 IT 기기 모두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어 관련 업계가 스마트 카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전자업체지만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최근 사정이 좋지 않다. ‘어닝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이 나빠졌다. 올해 1분기(1∼3월) 실적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최고재무담당자(CFO) 이상훈 사장 주재로 사업부별 사장단이 ‘한계 돌파’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현대차도 비슷한 상황이다. 계열사인 기아차를 포함해 세계 5위 자동차 업체지만 엔화 약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저하로 세계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관련 업계가 주목하는 차량용 IT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제휴에 나선 두 회사가 미묘한 경쟁의식 때문에 가까운 곳의 파트너를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자존심이 아니라 수익이다. 두 회사가 한 번 더 ‘동침’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삼성전자#현대자동차#차량용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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