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허진석]숭례문과 김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허진석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허진석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숭례문 복원 부실 논란이 한창이다. 곱게 칠해져 있어야 할 단청이 일부 벗겨졌고, 숭례문에 쓰인 목재에서 틈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강송 대신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복원에 참여한 단청 장인은 자문회의에서 안료와 접착제를 지금의 기술이 아닌 ‘전통’으로 하면 단청이 벗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고 알려졌다. 목재는 지금 기술로 건조하면 20여 일 만에 충분히 말릴 수 있지만, 전통 방식을 추구하면서 그에 맞는 건조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갈라지고 있다는 외부 전문가의 지적도 나왔다.

혼란스럽다. 전통이 잘못이란 말인가. 혼란을 정리하려다 보니 ‘왜 우리는 문화재를 보존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닥뜨렸다.

먼저 김치 얘기를 해보자. 김치는 숭례문만큼이나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표현해 주는 유산이다. 김치는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서양인들도 즐겨 찾기 시작했고, 김치를 담그는 김장문화는 얼마 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선정됐다.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했다’는 표현조차 어색하게 만들 정도로 배추김치와 한국인은 일심동체다. 이런 배추김치가 태고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흔히들 임진왜란 이후에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왔으니 ‘빨간 김치’는 그 이후에 생긴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사실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과 같이 속이 차는 결구(結球)배추로 만든 김치는 기껏해야 100여 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이다. 장인용 씨가 펴낸 책 ‘식전’(지호출판)에 따르면 김치를 담그는 대표적인 이 결구배추는 1906년 농촌진흥청의 전신인 권업모범장에서 보급하면서 우리에게 널리 퍼졌다. 된장찌개도 200∼3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 모양새는 다르다. 된장찌개의 주요 재료인 감자가 19세기 중반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이처럼 변화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 변화의 한 구간을 잘라 그 처음과 끝을 비교해 보면 ‘인간의 기술’이 있다. 이전 시대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전통’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예전의 과학 수준으로는 그 폐해를 알 수가 없었던 납과 같은 중금속이 전통 안료 속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문화재라고 처음부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가 사라질까 봐 김연아의 스케이트를 ‘예비문화재’로 지정해 미리 보존을 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이번 숭례문의 복원 기본 원칙에는 ‘화재 전의 모습대로 복구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자가 참여해 전통기법과 도구를 사용해 복구한다’ 등이 들어 있었다. 화재 전 모습으로의 복구는 괜찮았는데, 전통기법은 너무 과하게 추구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국보 1호 숭례문을 관리 부실로 불태웠다’는 부채 의식 때문에 ‘전통 교조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하는 때다.

허진석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jameshuh@donga.com
#숭례문 복원#전통#문화재#김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