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국민을 위한 ‘쇼’를 준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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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정치부차장
하태원 정치부차장
확실히 그녀는 달랐다. 소름이 끼칠 만한 ‘임팩트’가 느껴졌다.

2010년 7월 2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 앞. 빗방울은 굵었고 두 발짝 건너 북녘에선 인민군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50cm 앞에서 본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존재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상 첫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참석차 방한했던 클린턴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은 천안함 폭침을 자행한 북한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사실 ‘도발억제’를 강조한 두 장관의 메시지는 대동소이했다. 먼저 발언한 게이츠가 사용했던 발언문 원고가 힐러리의 손에는 들려있지 않았다. 게이츠와 달리 우산을 거절한 힐러리 뒤로는 북한의 ‘판문각’이라는 간판이 뚜렷했다.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진 게이츠 성명이 진지한 경고 같았다면, 힐러리의 추상(秋霜)같은 호령은 최후통첩으로 들렸다.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을 초월해 5년 가까이 세계 최강 미군을 지휘했던 게이츠를 압도했던 클린턴의 힘은 이렇게 미묘한 차이에서 왔다.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본 소감은 솔직히 ‘별로’였다. 대통령과 기자의 거리는 왜 그렇게 멀고, 대통령 좌우에 병풍처럼 배석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 모습은 왜 그리 어색해 보이던지….

대통령의 전반적인 발언 속도는 느린데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허은아 소장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뒤 청중의 호응을 기다리는 ‘몇 초의 여유’를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박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보여주기식을 혐오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에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벤트식 일정을 ‘정치쇼’로 생각해 마뜩지 않아 하는 성격 말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보면 어떨까. 백악관 청소부와 이른바 ‘주먹 인사’를 하는 파격(破格), 자신의 연설 도중 ‘이민개혁’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운 한국계 홍모 씨를 행사장에 끝까지 머물게 한 관용,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수행 때 백악관 상황실 정중앙 자리를 양보한 채 점퍼 차림으로 구석자리를 지켰던 겸손…. 박 대통령 관점에서는 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흐뭇해진다.

하지만 ‘그림’은 결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밥만 먹고 오바마 이미지만 생각하는 전담팀의 피나는 준비와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연단에 등장할 때 몇 번째 계단부터 뛰어오를지, 와이셔츠 단추는 몇 개를 풀지, 소매를 접을 때는 몇 번을 걷어 올릴지…. 수많은 예행연습 끝에 가장 역동적으로 대중 속에 각인되는 오바마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공식일정에서 공개되는 한 장의 사진, 청와대에서 진행되는 수석비서관회의의 동영상이 박 대통령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메라비언 법칙’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인상은 표정, 몸짓 등 시각적 요소(55%), 목소리의 크기나 음색 등 청각적 요소(38%)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말의 내용은 7%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렵다? 그럼 딱 하나 먼저 바꾸라고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 때 벌어지는 ‘대통령 교시(敎示)’ 받아 적기 경연대회 중단이다. 대통령 말씀이 너무 중요해 꼭 메모해야 한다면 최소한 카메라에 찍힐 때만큼은 대통령과 토론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없을까.

하태원 정치부차장 triplets@donga.com
#게이츠#힐러리#박근혜 대통령#신년기자회견#소통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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