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염수정 추기경 시대, 새로워진 가톨릭의 소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을 비롯해 새 추기경 19명을 임명했다. 한국에서 추기경이 나온 건 고(故) 김수환 추기경(1969년)과 정진석 추기경(2006년)에 이어 세 번째다. 로마교황청이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로 신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국민의 경사다.

어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임명 축하식에서 염 추기경은 “뿔뿔이 흩어진 양들을 모아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고 한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교황 다음의 고위 성직자로 교계 안팎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2009년 선종한 김 추기경은 종교는 물론이고 이념과 정파, 지역과 계층을 초월한 나라의 큰 어른이었고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다. 새로 탄생한 염 추기경도 국민 모두를 통합으로 끌어안는 치유의 지도자가 돼 주었으면 한다.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200년이 넘는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숱한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약자들의 편에 서서 복음을 전파했다. 특히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 오늘날 신자 수가 500만 명을 넘어 증가세를 이어 가는 배경이다. 그러나 최근엔 정의구현사제단 등 일부 사제의 편향된 정치적 언행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신도들이 오히려 사제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염 추기경이 지난해 말 강론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선을 그은 것도 그런 우려를 대변했다고 봐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빈곤층과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추기경들을 새로 임명한 점에 주목했다. 염 추기경도 유럽이 아닌 지역 출신으로 거명했다. 그렇다고 바티칸이 한국을 교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했던 1970, 80년대 수준으로 여기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국내의 일부 평신도단체가 교황에게 진보적인 인물을 추기경으로 서임해 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요즘 명동성당에선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함께 하는 것으로 미사를 마무리한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염 추기경의 소임(所任)이 이 기도문에 잘 나와 있다.
#염수정 추기경#가톨릭#임명 축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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