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안티에이징의 욕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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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내 개봉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자가 등장한다. 노인으로 태어난 주인공 벤자민은 해가 갈수록 젊어지더니 갓난아기로 생을 마감한다. 나이 들수록 어려지는 삶도 꽃놀이패는 아닌가 보다. 극중 주인공은 말했다. “모든 일이 마음 같지 않을 때, 미친개처럼 날뛰거나, 욕을 퍼붓고, 신을 원망할 수 있지.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결국 모든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직장마다 시무식이 열렸던 어제, 우리가 가장 많이 주고받은 덕담이다. 2014년 우리가 어떤 복을 받을지는 예측하기 힘들어도, 새해가 밝으면서 다들 어김없이 한 살씩 더 먹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몸짱 얼짱에 이어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童顔)이 또 하나의 스펙이자 경쟁력이 된 한국 사회. 5060세대가 거울에 비친 주름을 세다가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도 이맘때 통과의례다. 피부 노화를 개선해준다는 ‘안티에이징’ 라인의 화장품을 살지, 어려 보이는 동안 시술을 받을지 내심 궁리도 하면서.

▷칠순을 두 해 앞둔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전반적인 안티에이징 서비스를 받기 위해 5일 방한한다. 피부관리를 받을 연인 엘리자베스 씨와 1주일간 머물면서 복부지방을 줄이는 초음파 시술에 눈꺼풀 처짐을 해결하기 위한 시술도 받을 예정이란다. 그의 방한은 성형외과 피부과를 포함한 한국 의료의 질이 세계 수준임을 보여주는 ‘의료 한류’의 사례다.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오래 살고 싶지만 늙고 싶진 않다는 이율배반적 욕구는 웰에이징, 해피에이징, 스마트에이징 같은 개념으로 포장된다. 팽팽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위해 의술의 힘을 어느 정도까지 빌리는 것이야 나쁘지 않지만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훈장처럼 새겨진 인생의 무늬마저 깡그리 지워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조건 노화에 저항하기보다 나이에 대한 예의를 지켜가며 사는 것, 지금의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오늘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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