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근혜 정부 첫 ‘부자 증세’, 세금 누수 못 막으면 헛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소득세 최고세율(38%)을 적용받는 과세표준(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구간이 현재의 3억 원에서 1억5000만∼2억 원으로 낮아질 모양이다. 현재 고소득층 가운데 8만∼12만 명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부자 증세’인 셈이다. 대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각종 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최소한 내야 하는 세율)은 현행 16%에서 17%로 1%포인트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대통령선거 때 공약한 대로 “증세를 하기에 앞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결국 ‘있는 사람이 더 내는’ 방식을 택했다.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예산만 135조 원이다. 내년도 복지예산은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쓸 돈이 늘어나니 증세 없는 공약 이행은 불가능해졌다.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를 늘리려면 어느 정도의 증세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세법 논의 과정에서 각종 비과세·감면 축소 법안이 상당 부분 후퇴해 내년도 세입 예산안에서 벌써 4000억 원가량 구멍이 났다. 내년도 예산안은 이미 적자 예산으로 편성했다. 이번 증세안은 예산 부족분을 메우고 조금이라도 세수를 늘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줄줄이 부도 위기에 빠졌던 남유럽 국가들을 보면 재정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한국도 산더미 같은 공공기관들의 부채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증세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가 올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이후 중산층 국민의 강한 저항에 부닥친 것이 단적인 예다. 증세를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는 것’에 비유한 청와대 수석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증세에 앞서 정부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일이 먼저다. 복지 예산이 중간에 줄줄 새고, 보험 사기로 인해 건강보험이 엉뚱한 곳에 지급되는 상황을 방치하면서 세금만 더 걷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부동산 취득세를 놓고 올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서로 얼굴을 붉히기까지 하며 싸웠다. 재정 부족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대선 공약이라도 털어낼 것은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여야 국회의원들부터 지역구 선심용 ‘쪽지 예산’을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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