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빚더미 거대 공기업 그냥 두고 공공기관 개혁 되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2일 03시 00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본인과 가족의 의료비를 연간 500만 원까지 지원한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본인 및 배우자의 부모 회갑 때 3일 휴가를 준다. 정부가 어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서 발표한 방만 경영 사례들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8대 방만 경영 유형을 공개하고 한국마사회 인천공항공사 한국조폐공사 등 20개사를 중점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빚이 가장 많은 대형 공기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등 12곳이다. 12개 기업의 빚은 412조 원으로 전체(295개 기관 493조 원)의 83%다. 이들이 안고 있는 금융부채의 80%는 정부 사업을 수행하면서 발생했다. 이들이 “방만 경영 때문이 아니라 국책 사업 때문에 빚이 늘었다”고 항변하는 이유다.

정부는 부채가 지나치게 많은 12개 기업도 중점 관리하겠다고는 했다. 이들 기관은 다음 달 말까지 부채감축 계획을 내야 한다. 내년 3분기(7∼9월)에 평가해 부채감축 실적이 부진하면 기관장 해임까지 고려하고 있다. 부채 발생 원인별로 구분회계 제도를 도입하고 채권 발행을 자제토록 하는 원론적 방안 외에 부채를 줄이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LH와 한전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아 자구 노력도 쉽지 않다고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임원 보수 삭감은 당연히 해야지만 부채를 줄이는 데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어제 회의에서 “공공기관 부채와 방만 경영 문제가 우리 경제 전체에 잠재적으로 엄청난 리스크가 돼, 자칫하면 우리 모두가 공멸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파부침선(破釜沈船·전투에 앞서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히다)의 결연한 마음으로 공공기관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대책도 그만큼 비상(非常)해야 한다. 부채가 많은 12개 공기업보다 경영실적이 비교적 나은 작은 공기업 20개의 방만 경영만 물고 늘어진다면 아무리 빚이 많아도 덩치만 크면 손을 못 댄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공공기관들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공공기관들은 스스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원가 절감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임직원들에게 후한 성과급과 복지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걸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도 대규모 사업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자산 매각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무리한 국책 사업들을 공공기관에 떠넘겨 놓고 부실 책임을 묻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작은 공공기관들만 닦달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부채를 줄일 수 없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금융부채#정부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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