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동정민]대통령 차도 세운 자카르타 교통체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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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정치부 기자
동정민 정치부 기자
누구나 한 번쯤 대통령 경호원이 서서히 뛰다가 움직이는 차량에 훌쩍 뛰어 올라타는 장면을 TV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경호원은 폼을 잡으려 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차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경호 원칙 때문에 대통령 차가 출발할 때까지 주변을 경호하다가 그 이후에 올라타는 것이다. 차가 멈추는 순간 언제든 테러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차량이 인도네시아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10일 저녁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길에서 살인적인 교통체증 때문에 벌어졌다. 마침 터진 대형 교통사고도 한몫했다. 경찰 호위차량이 대통령 일행 차량이 움직일 차로를 확보하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며 노력했지만 꽉 밀린 차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3명 이상 차에 타야 대로(大路)로 진입할 수 있게 해 길거리에 아기를 안고 카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나 싼 기름값도 한몫한다. 정부의 과도한 기름보조금 정책으로 휘발유값이 너무 싸 너나없이 차를 샀다. 얼마 전까지 석유값이 L당 500원 정도였다니 그럴 만도 하다.

석유보조금 논란은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다. 평등하게 소득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차를 가진 부자들에게 더 혜택이 가고, 차 없는 서민들은 아무 혜택을 못 받아 빈부격차를 더 벌렸다. 기름보조금에 워낙 많은 재정을 투입하다 보니 다른 인프라 사업에 투자할 돈이 부족해졌다. 이제 와서 보조금을 줄여 기름값을 올리려 하니 물가가 급등해 전국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1년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올해 6월 기름값을 1차로 올렸고 추가 인상을 추진 중이나 국민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사례는 재정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실시한 복지 정책이 얼마나 큰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뒤늦게 이를 바로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지난주 방문한 브루나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 달러에 육박하는 석유 부국이지만 인구가 늘자 복지 수준을 축소하는 추세다.

박 대통령은 부족한 재정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모두 기초연금을 20만 원씩 주겠다는 공약을 수정했지만 앞으로 공약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고생만 해온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은 해야 한다는 뜻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연금은 한번 해보자고 시작할 문제가 아니다. 혹시라도 미래에 재원 부족으로 못 주는 상황에 면밀히 대비해야 한다. 기초연금 정책에 젊은층의 반발이 심한 데는 국민연금에 대한 강한 불신도 깔려 있다. 공무원·사학·군인 연금을 포함해 연금의 전반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기초연금 정책을 추진해야 국민이 수긍할 것이다.

동정민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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