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시 출신이 독점해 온 관료사회, 문 활짝 열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정부는 2000년부터 중앙 부처 고위공무원(실·국장급)의 20%를 민간에서 채용하는 개방형 공직자임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부처 1∼3급 고위공무원은 1126명으로 이 가운데 88명을 외부에서 충원했다. 외부에서 임용된 고위공직자는 목표치 20%보다 훨씬 낮은 7.82%에 불과하다.

민간 분야의 유능한 전문가들이 공직 진출을 꺼리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정부 부처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리들을 민간 개방 대상으로 내놓아 공직을 외면하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인사들에게 비중 있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아 공직에 뛰어들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개방형 직위의 경우 정규직 공무원과 달리 통상 2∼3년 임기의 계약직으로 뽑는 데다 임금도 민간 분야보다 낮은 편이다.

겉으로는 개방형 임용 형식을 채택하면서도 실제로는 공무원 출신 인사를 임용한 사례도 지난해 147명이나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경우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개방형 직위로 공모한 8개 자리 중 7개를 식약처 출신 공무원이 차지했다. ‘무늬만 공모’였다. 미국과 유럽의 국제기구에 파견된 국장급 공무원을 임기도 마치기 전에 급히 불러 개방형 직위에 공모하라고 채근해 자리를 채운 부처도 있다. 외부에서 응모한 민간 전문가들은 결국 ‘들러리’였던 셈이다. 이래서야 우수한 전문가를 영입해 공직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KDI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공직 임용 개방성을 수치로 계산한 결과 0.39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0.478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이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공직 임용의 개방성이 높다는 뜻이다. 한국은 OECD 평균은 물론이고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멕시코보다도 낮았다.

KDI 분석에 따르면 공무원들이 외부에 빗장을 치고 그들만의 ‘철밥통’을 고수할수록 국가 부패도 심했다. 한국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에 이어 4번째로 부패가 많은 나라로 꼽혔다. 한 번 공무원 임용고시에 합격하면 고시 출신들끼리 똘똘 뭉쳐 공직에 안주하고 퇴임 후에는 낙하산으로 유관 기관에 내려가는 풍토를 끊지 않고는 관료사회의 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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