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첫 예산부터 흑자 약속 못 지키는 박근혜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2일 03시 00분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적자 예산을 편성할 예정이다. “2014년부터 재정수지 흑자를 내겠다”는 이전 정부의 약속을 1년 만에 뒤집었다. 현 정부 출범 후 처음 짠 예산부터 약속을 깨겠다는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9월 발표한 재정계획에서 정부는 2014년부터 흑자 예산을 짜고 2015년부터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현재 36.2%)을 20%대로 떨어뜨리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허언(虛言)은 내년 한 해로 그칠 것 같지 않다. 내년에 발생하는 적자는 새로운 복지를 도입해서가 아니라, 주로 기존 복지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 생기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 탓이다. 복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면 앞으로 적자 폭은 더 커지게 되어 있다. 당초 박근혜 정부가 목표로 한 ‘임기 내 균형재정 달성’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정부는 대내외 경제 여건과 정책 목표를 고려해 재정의 적자 또는 흑자를 선택할 수 있다. 국내 경기는 이미 반등세로 돌아서 내년은 회복이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위적 경기 부양에 필요한 정부 사업을 위해 적자 예산을 편성할 상황이 아니다. 내년 재정 적자는 쓸 곳을 많이 만들어 놓고 쓸 돈을 마련할 궁리는 게을리해 비롯됐다.

한국의 복지 지출은 GDP 대비 9.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비율은 OECD의 34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조세 부담률도 20.2%로 재정 수요나 국가 위상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편이다. ‘복지와 증세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하지만 복지 확충과 이를 위한 증세는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조세부담률을 2017년 21%로 향후 5년 동안 겨우 0.8%포인트 높일 계획이다. 그것도 직접 증세가 아닌 세 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이루겠다고 한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대선 공약에 발목이 잡혀서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정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현 정부가 복지 확대를 원한다면 국민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계속 문제를 회피하면 복지 약속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
#박근혜#적자 예산#재정수지 흑자#복지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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