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춤도 추고 소득도 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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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11일 관훈클럽 초청연사로 나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고강도의 북한 위협에 대해 선제적이고 전략적으로 응전(應戰)했다는 자부심도 감추지 않았다. 야근을 많이 해 아랫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올빼미’ 논란이 있지만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에서 책임 장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안보 현안이 생기면 박 대통령이 많이 찾는 사람도 윤 장관이라고 한다.

5월 한미 정상회담, 6월 한중 정상회담은 윤 장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던 한미관계는 동맹 60주년을 맞아 한층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다소 소원했던 한중관계도 본궤도에 오른 느낌이다. 특히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북핵 불용(不容) 메시지는 이전 정상회담 성명의 강도를 훨씬 능가했다.

무리한 3차 핵실험 탓도 있지만 핵 무장을 고집하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것도 우리 외교의 개가(凱歌)다. 북한의 악행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탓에 부득불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북한의 억지주장을 인용(認容)하곤 했던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다자회의에서도 북한의 목소리는 더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다.

윤 장관은 중국이 대북(對北) 정책과 관련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 3원칙 중 으뜸으로 쳤던 한반도 안정보다 북한의 비핵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북한 핵실험 때문에 압록강이 오염됐다고 말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언에 더해 “중국 고위층은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로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천기누설(天機漏洩)도 했다. 한반도 통일을 보는 중국의 시각에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사실이라면 대박이다. 시진핑 주석 체제 출범과 함께 중국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중대논쟁에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정학적(地政學的), 지전략적(地戰略的) 관점에서 북한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부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1400km에 이르는 북-중 국경선에 철책을 쌓고 경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북한을 두둔할 생각만큼은 접은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현실적이고 냉정한 미국의 중국 변화에 대한 평가가 맘에 든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는 희석됐지만 여전히 북한을 매몰차게 내칠 수 없는 중국의 고민을 미국은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북핵 이슈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를 보는 중국의 사고방식이 미국과 한국 쪽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면 좋지 않겠느냐는 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북핵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게 중국이라지 않나.

상반기 우리 외교는 분주히 움직였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북한의 선택지가 좁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북한이 ‘2·29 합의+α’를 이행하고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의 고민도 여기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신질서 수립을 위해 소집된 빈 회의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1년 가까이 진행되고도 “회의는 춤을 추나 소득은 없다”는 조롱을 받은 것은 국제정치사에서 유명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의 북핵외교가 악행에 대한 불보상이란 원칙을 지켰음에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결과물을 내지 못한 ‘불임(不姙)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산고(産苦)가 아름다운 것은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위대한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춤을 잘 췄다면 이제 소득으로 증명해야 한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한미 정상회담#한중 정상회담#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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