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총리가 안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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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미국에 이어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많은 성과를 안고 돌아왔다.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은 물론이고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도 자부심을 느꼈을 법하다. 얼마 전 미국계 다국적 언론사 고위 임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미 정부는 박 대통령 미국 방문 외교에 100점을 주는 분위기다. 윤창중 사건이 옥에 티이긴 했지만 대통령은 매너, 메시지,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 미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완벽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치권에는 지금 ‘국정원 개혁’ ‘서해 북방한계선(NLL) 공방’이 한창이다. 안보사안이므로 중요한 주제다. 문제는 논쟁의 진짜 목표가 안보 강화가 아닌 ‘상대방 깎아내리기’ 혹은 ‘이념적으로 고립시키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국민에게 실익이 없는 공방(攻防)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현장을 들여다보자. 기자는 최근 경제인들을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지 이미 오래라며 이구동성으로 민생을 걱정했다.

“건설 경기는 최악이다. 오죽하면 건설 경기를 일으키려면 건설사들이 모여 남북통일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말도 한다.”(건설회사 임원)

“복지 재원 마련한다고 국세청이 중소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너무 뜯어간다.”(중소기업 사장)

“실물 경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하반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대기업 임원)

“2008년 금융위기 악몽이 자꾸 떠오른다.”(외국계 펀드매니저)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각종 통계치도 현장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장률은 사상 처음으로 8분기 연속 0%대이고 지난 5년간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상승률도 계속 줄고 있다(기획재정부). 한국 경제를 지탱해 왔던 수출도 엔저(円低) 현상으로 비상이 걸렸다. 가계 부채는 1000조 원에 육박하는 데다 일하는 사람 중 자영업자 비중(4월 기준)은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일각에선 ‘경제가 괜찮다’는 착시 현상이 있는 건 왜일까.

사상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실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매출 기준 상위 100대 상장기업 중 상위 3개사를 제외한 97개 기업의 지난해 수익은 반 토막 가깝게 떨어졌다. 그나마 삼성, 현대조차도 더이상 낙관적 전망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엔저로 어려운 와중에 내부적으로는 노조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대기업에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노조가 갑이고 회사가 을이 된 지 이미 오래다. 현대차의 한 대리점 사장은 “상반기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외제차 점유율이 이미 10%를 넘었다. 게다가 8월부터 파업을 할 게 뻔하므로 실적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1분기 현대차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10.7%나 떨어졌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사업부서가 전체 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스마트폰 붐’이 꺼질 경우 앞날을 알 수 없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 급락은 스마트폰 포화에 따른 판매실적 우려에 ‘혁신 부족’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자에게 “스마트폰 진화는 이제 거의 끝나간다. 중국이 우리 기술에 근접한 제품을 대당 200달러에 내놓고 있다. 중국은 이미 삼성 LG 턱밑까지 추격했다”고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어수선한데 요즘 총리가 안 보인다. 대통령은 외교하느라 바쁘고 경제팀은 갈팡질팡하는데 총리는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국제관계와 남북관계가 나라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국에선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집중하는 게 타당한 일이다. 내정은 총리가 주도적으로 챙기는 게 맞다. 경제장관 회의도 주재하고 민생 현장도 살피고 미디어와도 자주 접촉해서 국민과 더 소통해야 한다. 대통령 눈치만 보는 총리가 아닌, ‘민생의 그늘’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총리를 보고 싶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박근혜 대통령#총리#정치#경제#국정원#NLL#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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