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작은 청와대’, 무엇이 작아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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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청와대 비서실의 직원은 480여 명으로 이명박 정부 때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국가안보실, 미래전략수석실 등이 새로 생기면서 비서관실별 근무인원은 전 정부보다 10%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임기 초 비서관실마다 “사람이 없다”며 아우성쳤지만 지금은 가슴을 쓸어내릴 것 같다.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나야 할 판에 사무실에 사람이라도 적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인원도, 조직도 줄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작은 청와대’를 지향했다. 대통령실을 대통령비서실로 원위치한 것도 청와대의 힘을 빼려는 조치였다. 그의 구상은 절반쯤 성공한 듯싶다. 청와대의 월권이나 내부 권력투쟁은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청와대 참모들은 그저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여념이 없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의 말이다. “우리는 수렴형 사고를 하지만 대통령은 확산형 사고를 한다. 우리는 큰 것을 해결해 작은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대통령은 작은 문제를 해결해야 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좌 역할의 롤모델은 역시 이정현 홍보수석이다. 이 수석을 보면 노련한 연기자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남북 당국회담을 앞두고 남북이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던 10일 이 수석은 “오늘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와 관계없는 얘기”라며 “(수석대표의) 격(格)이 서로 맞지 않으면 시작부터 상호 신뢰를 하기 어렵다”고 ‘격 문제’를 성토했다. 자신의 생각인 양 얘기했지만 남북회담이 무산됐을 때 통일부는 이 수석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10일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격 문제’였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12일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라며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이틀 뒤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국무위원을 만나 똑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의 현재 발언을 과거 발언으로 ‘포장’한 건 아마도 ‘대통령이 형식에 얽매여 회담이 무산됐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이 수석 나름의 ‘계산’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덤으로 박 대통령이 과거부터 얼마나 원칙을 중시했는지도 강조할 겸 말이다.

박 대통령을 향한 참모들의 헌신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절반의 성공이라는 건 박 대통령의 사고가 참모들의 사고를 지배하면서 모두 작은 문제 해결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청와대의 무게중심은 정책이 아닌 정치에 있다. 정책은 내각의 몫이다. 하지만 오늘도 상당수 행정관들은 부처 보고서를 요약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이 정부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국정의 큰 그림은 누가 그릴까. 오직 한 사람만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청와대, 정말 작아진 것은 참모들의 국정 디자인 능력이 아닌가 싶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국가안보실#미래전략수석실#근무인원#작은 청와대#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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