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효재]이런 식의 대정부 질문은 그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효재 18대 국회의원·전 대통령정무수석
김효재 18대 국회의원·전 대통령정무수석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한다. 300석에 이르는 의석은 텅 비어 있다. 높다란 천장과 휘황한 조명, 천장 높이만큼 걸려 있는 무궁화 문양의 커다란 금제 국회 상징.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조차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두어 달에 한 번쯤 꼭 보게 되는 우리 국회 대정부 질문 장면이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이 막힌 언로를 뚫고 국민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적이 있었다. 언론에 재갈이 물려 있던 군사독재 시절이다. 야당 지도자가 단식투쟁을 계속해 건강 이상을 보이는데도 신문이 ‘정치 현안’이란 표현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정치 현안’이 바로 야당 지도자의 생명을 건 단식이란 사실을 알린 것도, 전직 대통령이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도, 대통령의 동생이란 사람이 새마을운동 단체를 통해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국정을 농단한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댄 것도 모두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대정부 질문을 통해서였다.

그 시절 언론은 국회의원들의 질문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정보를 얻었으며 국민들은 대리 만족을 느꼈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면책특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정보 과잉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국회의원으로 대정부 질문을 해봤고 대통령정무수석으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도 해본 경험을 근거로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대정부 질문은 그만둘 때가 됐다.

첫째, 너무 비효율적이다. 국회가 열리면 먼저 하는 일이 각 당 대표 연설이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여야 당 대표는 물론이고 비교섭단체 대표도 하루를 잡아 연설한다. 40분에서 50분 정도 소요되는 당 대표 연설을 듣기 위해 국무총리와 모든 국무위원은 한나절 또는 하루를 들여 세종시에서 과천에서 세종로 청사에서 여의도로 모였다가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일주일가량을 보내고 나면 시작되는 것이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사회 분야 등으로 나뉜 대정부 질문이다.

이때 역시 국무총리와 해당 분야 국무위원은 종일 의사당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거의 모든 국회의원의 질문은 국무총리에게 집중된다. 해당 분야 장관은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켜봐야 답변 기회가 거의 없다. 일주일 내내 자리를 지키고도 입도 벙끗 못하는 장관이 대부분이다.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의 행정사무를 총괄 지휘해야 할 장관이 두 달에 한 번, 2주일가량을 ‘국회 본회의장 자리 보초’로 이렇게 허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두렵다.

둘째, 질문 내용도 총리와 모든 장관이 함께 들어야 할 내용은 거의 없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여야의 정치 공세를 위해 호통으로 포장된 ‘주장’들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구 민원성 질문이다. 국회의원들이 대정부 질문 기간에 아예 자리를 비우거나 휴대전화로 딴짓을 하다가 언론의 망원 카메라에 걸려 망신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게으름이나 별난 취미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같은 방식이 아니라 국회가 열리면 곧바로 상임위원회별로 일을 하면 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여야가 합의하면 되고 대부분의 문명국가가 이렇게 하고 있다. 그게 국회의 권위를 세우고 국민을 존중하는 일이다.

김효재 18대 국회의원·전 대통령정무수석
#국회#대정부 질문#국무총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