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회담 무산, 아쉽지만 북의 고집은 오만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오늘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로 양측이 대립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이 얼마나 힘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식이라면 설령 당국회담이 열렸더라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우리 측은 수석대표로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각각 선정해 통보했다. 하지만 북측은 우리의 수석대표가 장관급이 아니라 차관급이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북측의 국장급 수석대표에 비하면 우리의 차관급도 높은 편인데 격이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장관급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옹졸하고 오만하다. 북이 진정 당국회담을 열 의사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남북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모두 21차례의 장관급회담을 가졌지만 수석대표의 격이 달랐다. 남측은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선 반면 북측은 우리로 치면 이사관(2급)이나 부이사관급(3급)인 내각 책임참사를 내세웠다. 격이 맞지 않은 회담이었지만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의 특수한 사정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수용했다. 햇볕정책의 성과에 연연한 탓이 컸을 것이다. 이런 비정상과 비상식은 회담 대표의 격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돈과 식량 등 북에 줄 것은 다 주면서도 정작 비핵화나 장거리 미사일 개발 저지 등 주요 현안에서는 늘 북에 끌려다녔다.

북한이 이번에 우리 측 수석대표의 격을 문제 삼은 것도 이 같은 과거의 전례와 향수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회담을 앞두고 “격이 맞지 않는다면 시작부터 서로가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이는 회담에 임하는 기본자세로, (남북 간에도) 국제 스탠더드가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는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당한 주장이다.

무슨 회담이든 내용 못지않게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다. 절차와 형식은 신뢰의 기초에 해당한다. 북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남북이 아무리 회담을 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북한은 진정 남북 현안들을 해결하고 지금의 교착 상태를 풀려는 생각이 있다면 회담에 임하는 자세부터 바꾸는 게 옳다. 박근혜정부가 예전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이상 북한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능하면 모처럼 마련된 남북 간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나가길 촉구한다. 이번 회담은 무산됐지만 남북 당국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남북 사이에는 해결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남북이 지금 보여줘야 할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좀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신념이다.
#당국회담#남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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