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그들의 추락에 대비한 장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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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세바스티앵 르노르망은 1783년 나무틀에 천을 댄, 폭 4m 정도의 커다란 우산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광장에 있는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렸다. 낙하산을 대중 앞에 처음 선보인 것이다. 이 새로운 장치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그는 ‘반대(against)’라는 뜻의 그리스어 ‘para’와 ‘추락(fall)’을 뜻하는 프랑스어 ‘chute’를 붙여 ‘파라쉬트(parachute)’라고 답했다. ‘추락에 대비한 장치’라는 뜻이다.

‘추락에 대비한 장치’, 곧 낙하산은 우리나라에서 이상한 용어로 변질됐다. 채용이나 승진 따위의 인사에서, 배후에 있는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빌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된 것이다. 해당 조직에서 보면 뜻밖의 인물이 난데없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기술계에 최근 형성되고 있는 기관장급의 인사기상도(人事氣象圖)를 보면 바람을 가득 안은 낙하산이 여기저기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조만간 앞다투어 착지를 시도할 것이다. 낙하산이 죄다 나쁜 것은 아니다. 봄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처럼 둥둥 떠다니다 아무 데나 내려앉아 쓸데없는 꽃을 피우는 낙하산이 문제다.

거대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룡처럼 탄생한 뒤라 여기저기에 이무기가 살 만한 웅덩이가 많이 파였다. 미래부 및 원자력 관련 부처의 신설 조직과 산하 기관의 기관장은 물론이고 민간단체의 이사장이나 사무총장까지 빈자리가 보인다. 전문성이 필수적인 일부를 제외하고, 이들 빈자리를 채우려다 보니 내려보낼 직급에 맞는 낙하산이 모자랄 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4월 국무회의에서 장관이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책임장관제를 실시하며, 공공기관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뜻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장관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관련 기관장의 인사에 대해 장관들이 어떤 책임의식을 갖고 챙기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정철학? 거 참, ‘국민정서’만큼이나 애매한 말이다. 임기가 남은 기관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한 용어처럼 보인다.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신임 낙하산 기관장은 왜 하나같이 공무원 출신일 것 같은 예감이 들까? 공무원이 아니면 국정철학을 공유하기 어려운 걸까? 장관은 그 낙하산 인사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있을까?

낙하산은 비행기보다 먼저 발명됐다. 추락에 충분히 대비한 뒤에야 비행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누구의 추락에 대비한 낙하산일까? 자칫하면 고위직에 있던 공무원이나 정치권 인사 같은 개인의 추락에 대비한 장치일 수 있다. 개인의 추락에 대비한 용도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추락을 두려워하는 그들이 차지한 조직은 점점 더 무기력해지거나 더 부패하기 십상이다. 원자력계의 오랜 동종교배식 낙하산이 최근 잇달아 원전 비리를 일으킨 ‘원자력 마피아’를 키웠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을 되새겨 보자.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이유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서였지만, 르노르망이 낙하산을 발명한 이유는 건물에 불이 나 갇힌 사람들이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낙하산은 추락에 대비한 장치라기보다는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안전하고 정확하게 착지하도록 돕는 장치’가 됐다. 예전에는 낙하산을 탄 사람의 안전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낙하산을 탄 사람의 임무가 더 중요하다.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싶다면 능력 있고 믿을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가 확실하게 임무를 수행토록 하라.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과학기술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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