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나라 빗장 풀고 세계에 식량지원 호소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8일 03시 00분


북한이 군량미(軍糧米)를 풀어 주민에게 배급하고 있다고 한다. 주요 도시에서 3개월째 군량미 창고를 열어 직장에 다니는 성인에게 매달 보름 치, 부양가족에게는 열흘 치 식량을 배급했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비해 쌓아 놓은 군량미를 배급용으로 풀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북한의 식량난은 절박한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할 때도 군량미를 줄이기는 했지만 주민 배급용으로 쓰지는 않았다.

북한에서 식량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 닥쳐 온 고통은 김정은이 자초한 것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對北) 제재가 강화되면서 외국에서 보내오던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이 급감했다. 중국은 해마다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전후해 식량을 대규모로 지원했지만 올해는 하지 않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이 올해 51만 t의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데 4월까지 수입량이 1만2400t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6월까지는 식량난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은 지난해 4월 김일성 100회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주민의 허리띠를 다시는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 주민은 이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군량미 배급은 주민을 일시적으로 무마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나마 일반 주민은 장마당 영업과 개인 뙈기밭 농사로 최악의 고비를 넘기고 있지만 군인들은 보급 사정이 급격하게 악화돼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동부전선을 통해 남한으로 넘어온 ‘노크 귀순’ 병사도 배가 고파 음식물을 훔쳐 먹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기대 수명은 69세로 남한 주민보다 12년이 짧다. 김일성 일가의 68년에 걸친 독재가 초래한 참상이다. 김정은이 지금이라도 북한 주민을 살릴 생각이 있다면 나라의 빗장을 열고 세계 각국에 인도적 지원을 호소해야 한다. 북한이 대결 정책을 포기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온정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북한#식량지원#식량난#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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