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진우]엔저시대 생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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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우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황진우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요즘 엔저로 야단이다. 작년 9월 70엔대이던 엔-달러 환율이 100엔에 육박하고 있다. 동시에 원-엔 환율도 1400원대에서 1100원대 초반으로 급락했다. 일본과 경합하는 상품들의 수출이 어려워지는 것을 비롯해 갑자기 상전벽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선두로 치고 나간 우리 전자회사들을 침몰해가는 일본 전자산업과 비교하면서, 일본을 추월하는 한국의 미래를 점치던 것이 불과 반년 전인데, 이제는 급격한 엔저에 맞닥뜨린 우리 경제의 앞날을 비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의 엔고는 특수한 현상이었다. 성장률 제로의 일본경제 체력으로는 가당치 않은 통화 강세였지만, 세계 금융위기로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떠올랐다. 금세기 초부터 금융위기 직전까지의 원-엔 환율 평균이 96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때 1600원대까지 치솟았던 엔고는 오래가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엔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아쉽게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십수 년간 뿌리내린 일본의 디플레이션이 단기에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일본은 양적완화 지속에 굳은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무엇보다 세계 주요국들이 이러한 일본의 정책변화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국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경제대국 일본의 회복이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조치들이 주요국들이 과거 십수 년간 일본에 끈질기게 권고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정권이 표방한 ‘3개의 화살’, 즉 금융완화, 재정유연성, 성장전략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주요 선진국들로서는 엔저가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깎아먹는 것이 달갑지는 않지만, 모두가 금융완화에 매진하고 있는 이때 일본에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북아 국제정치 역학구도에서 보더라도 중국이 무섭게 일어서고 있는 이 시기에 쇠락해가는 일본을 방치해 두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세계경제 침체가 아직 가시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는 양극화와 가계부채의 문제가 심화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모델이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스럽고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 이후 수출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우리 경제에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에도 그랬지만 결국 우리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절반의 해결책은 엔고시대 일본의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효율성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환율은 1차적으로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품질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결국 품질을 높이고 신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각광받던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모두 엔고에 따른 것이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정부도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급격한 환율변동으로 인한 부작용과 고통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나머지 절반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이번의 엔저는 우리가 새로운 성장의 패러다임을 발견하기 전에 찾아왔다. 우리는 아직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국가주도형 성장, 신자유주의 등의 키워드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졸속은 피해야 하겠지만, 적절한 방향 제시와 조속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의 시동을 다시 걸어야 한다.

우리에게 엔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1997년 경제위기 직전 2년간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 3년간에도 직면했었다. 결과는 대조적이다. 앞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제위기를 겪었고, 뒤에는 잘 준비하고 대처하여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위상을 높였다. 이번 엔저 시대 동안의 대응이 향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황진우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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