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초단체 선거의 정당 無공천은 또 다른 승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재·보선 개표가 있었던 24일 밤 민주통합당 중앙당사의 불 꺼진 브리핑룸은 제1야당의 무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민주당은 이번에 치러진 3곳의 국회의원 선거와 9곳의 기초단체 선거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더 허망한 것은 정작 후보를 공천해야 할 곳(서울 노원병)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곳(기초단체 선거)은 공천해 정치적 명분을 스스로 훼손한 점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초단체장 선거 2곳과 기초의원 선거 3곳 모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 때 정치쇄신 차원에서 기초단체 선거의 정당 무(無)공천을 약속했다. 이번 무공천은 공약을 이행한다는 차원이었다. 민주당도 대선 때 비슷한 약속을 했으나 5곳 가운데 3곳에 공천을 했다. 나머지 2곳도 공천을 안 한 게 아니라 사실상 못한 것이다. 선거 결과 민주당은 공천을 한 3곳에서 모두 패배했다. 선거에서 지고 명분까지 잃은 셈이다.

새누리당이 무공천을 결정할 당시 당 내부에서는 “민주당만 득을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공천자를 내지 않으면 무소속 후보들이 난립해 새누리당이 원하는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었다. 그런 부담까지 감수한 약속 이행이기에 더 값졌다.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새누리당의 무공천 실험은 일단 출발이 괜찮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이번에 선거가 있었던 기초단체 선거구는 여권이 워낙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 데다 무소속 출마자도 2∼4명뿐이었다. 무소속 후보들은 대부분 새누리당 소속이었고, 선거 과정에서 새누리당 성향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만약 여권 세력이 강하지 않은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가 다수 출마했더라면 새누리당은 원하는 당선자를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른 재·보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혼자만 무공천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초단체 선거에서 정당 무공천이 성공하려면 모든 정당이 동참해야 한다. 정당 공천은 책임정치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초단체 선거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을 상대로 ‘돈 공천’과 ‘줄서기’가 횡행했던 전례를 보면 폐해가 크다. 정당의 무공천은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민생과 풀뿌리 자치 중심으로 지방정치를 개혁하려면 기초단체 선거의 정당 무공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초단체#새누리당#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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