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우신]위태로운 펭귄마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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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1988년 2월 서울에서 1만7200km 떨어진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킹조지 섬에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남극에서 18번째 과학기지를 운영하는 국가로 도약하게 됐고, 이듬해 10월에는 남극조약(Antarctic Treaty) 운영의 배타적 권리를 갖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의 지위를 획득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약 1.5km 떨어진 나레브스키 포인트에는 펭귄 집단 번식지인 일명 ‘펭귄마을’이 있는데, 비교적 온화한 성격의 젠투펭귄 2000여 쌍, 까다로운 성격의 턱끈펭귄 3000여 쌍이 번식하고 있다. 이 펭귄마을은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남극조약환경보호의정서에 따른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171)으로 승인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관리하는 최초의 국외 자연보호구역이다.

한국 첫 국외 자연보호구역

남극은 기후변화 영향을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빨리 받는 지역이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펭귄마을로 간혹 찾아오는 아델리펭귄은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지만, 얼음이나 눈으로 덮인 지역을 더 선호한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남극의 빙산과 빙하가 녹을 경우, 아델리펭귄의 개체 수는 감소하는 대신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세 종의 펭귄 모두 개체 수가 지난 수십 년간 3∼4%, 지역에 따라서는 최대 75%까지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상은 새우와 비슷한 크릴(난바다곤쟁이류)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남극의 육상 생태계는 풍요로운 해양 생태계에 비해 단조로우며, 대부분의 먹이를 남극해의 생산성에 의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남극의 여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비를 이용해 펭귄의 먹이 활동을 추적한 결과, 이들은 섭씨 5도에 불과한 차갑고 거친 바다에서 최소 4시간, 최대 28시간씩 머물며 크릴을 주로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체 펭귄들은 암수 교대로 30∼80km를 이동하며, 자기 몸무게의 10∼15%에 해당하는 0.6kg의 크릴을 사냥한다. 이것은 펭귄에 의해 주변 바다에서 육상 생태계로 옮겨지는 크릴의 양이 매일 3t에 이르며, 새끼 펭귄이 수영을 시작하는 부화 후 90일까지 펭귄마을에서만 대략 270t의 크릴이 소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극해의 식물플랑크톤에 의해 형성된 에너지는 크릴을 통해 펭귄으로, 다시 펭귄을 잡아먹는 도둑갈매기로 전달되며, 이들의 배설물은 이끼류와 조류(藻類), 각종 미생물의 영양분으로 남극의 육상 생태계로 확산된다. 이처럼 크릴은 남극해의 해양 생태계와 육상 생태계의 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생물자원이다.

남극해의 보물, 인류의 미래 식량으로 간주되는 크릴은 얼음이나 유빙에 포함된 조류를 먹이로 삼는데, 남극의 기온 상승으로 인해 얼음의 양과 잔존 시간이 줄어들고 있어 많은 피해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크릴을 먹고 사는 고래류와 바다표범 등의 포획이 국제적으로 금지됨에 따라 포식자도 증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인간에 의한 대규모 상업적 크릴 조업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미래자원위해 과학영토 늘려야

모든 것이 부족한 극지에서 상설 기지를 운영하는 것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이는 우리가 당면한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추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다.

최근 우리나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영토 확장에 노력하고 있다. 비록 극지에서의 연구가 즉시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남극에서의 활발한 연구 활동은 남극의 미래자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 국제 전쟁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우리의 과학영토를 확장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세종과학기지#펭귄마을#자연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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