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6일 만의 정부조직법 타결, 나쁜 선례 남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8일 03시 00분


어제 여야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20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협상테이블에 앉은 지 46일 만이자, 박근혜 정부가 식물 정부로 일해 온 지 20일 만이다.

여야는 논란의 핵심이었던 종합유선방송(SO)과 위성TV 등 뉴미디어 관련 사항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되 미래부 장관이 SO와 위성TV 등 뉴미디어 관련 사업을 허가 및 재허가할 경우와 관련 법령을 제정·개정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야당은 방송의 중립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이 사안이 이렇게 오랜 기간 정부조직 개편을 지연시켜도 되는 명분이었는지 의문이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원안 고수’라는 강공으로 타협의 여지를 좁혔고, 여당은 집권당에 걸맞은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야당은 지루한 버티기로 편협하다는 인상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부터 새 정부가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 분위기를 일신해 위태한 안보 공백, 어려운 경제 공백, 흐트러진 행정 공백을 빨리 메움으로써 국민의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그동안 식물 국회, 식물 정부, 식물 국가를 보는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새 정부의 성패는 첫 100일에 달려있다는데 이 정부는 벌써 상당 기간을 허송세월했다. 국민은 박 대통령과 그가 구성한 내각 및 청와대가 새로운 국정철학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본인이 제시한 국민중심 행정, 부처 간 칸막이 철폐, 현장 중심 정책 피드백, 공직기강 확립 등 새 정부 운영의 4가지 원칙이 하루빨리 뿌리내리도록 독려해야 한다.

여야는 이번에 정부조직법뿐만 아니라 쟁점 현안에도 합의했다. 본래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상설특검 및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상반기 중 법제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검찰은 개혁의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기업의 담합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 검찰고발 요청권을 중소기업청장 조달청장 감사원장에게 부여하고 고발 요청이 있을 경우 공정거래위원장이 의무적으로 고발토록 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고발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3월 국회에서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안을 처리하고, 6월까지 인사청문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키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 여야가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을 3월 임시국회에서 공동 발의키로 한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면 즉각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감사원의 4대강 감사가 미진할 경우 국정조사를 벌일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은 야당의 소득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끼워 팔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검찰과 감사원이 수사와 감사를 제대로 하도록 견제한다는 의미도 없지 않으나 국회가 지나치게 수사권과 감사권을 침해한 것으로 선례가 되면 곤란하다.

여야는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지 않아 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한 미래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문제도 깨끗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장기간의 여야 대치는 우리에게 새삼 정치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정치는 한쪽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이견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여야, 청와대와 정부가 정치의 묘를 살려 더이상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도록 해 주길 기대한다.
#정부조직법#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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