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지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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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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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록스타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며 엄청난 팬클럽을 거느리고 있다.”

동유럽 슬로베니아 출신의 슬라보이 지제크를 두고 영국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한 말이다. 지제크 얼굴을 그려 넣은 티셔츠가 체 게바라 티셔츠처럼 팔리고 ‘국제 지제크 연구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Zizek Studies)’이 올해 제7권을 냈으며 ‘지제크!’란 제목의 1시간짜리 영화도 나왔다. 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영화 문화 비평과 결합해 글을 쓰는 독특한 사상가다.

우리나라에도 지제크 현상

지제크를 향한 컬트적 숭배 열기는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방한한 지제크의 두 차례 대학 강연은 준비된 좌석이 합쳐서 3000석도 안 됐는데 1만 명이 몰렸다. 그중에는 넥타이를 맨 젊은 직장인도 많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경희대가 그에게 1년 기한의 석좌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지제크는 올 9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함께 ‘공산주의 이념(The Idea of Communism)’ 학술대회를 아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에서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 학술대회는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열려 2010년 독일 베를린,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사그라진 공산주의 이념을 되살리자는 대회인데 주최자들에게는 2008년 금융위기가 자본주의를 쓸어버릴 쓰나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반향이 시들해지는지 2012년 대회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것을 올해 한국에서 열겠다는 얘기다.

바디우는 첫 런던 대회 발표문에서 공산주의에 망조가 들기 시작한 것은 소련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때부터라고 주장했다. 흐루쇼프가 반(反)자본주의 투쟁에서 1인 수령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화를 무조건 비판한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또 바디우는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는 한 쌍이므로 자본주의 전복은 의회민주주의 전복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제크는 바디우와 함께 ‘공산주의 이념’ 대회를 이끌어 온 쌍두마차다. 2010년 독일 학술잡지 ‘메르쿠르’를 보다가 앨런 존슨이 지제크를 인터뷰한 뒤 쓴 글을 읽었다. 지제크는 “혁명적 정치는 의사(意思)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 즉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진실한) 혁명적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존슨은 영국 마르크스주의 학술잡지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편집자로서 그를 인터뷰했다. 존슨은 서구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데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한다며 유토피아로의 폭력적 전환을 신봉하는 지제크에게 경악했다고 썼다.

지제크의 정치적 本色

지제크가 팝 문화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현대사회에 대한 매력적인 분석을 할 때만 해도 그의 정치적 지향에 대해 ‘관념적인 극좌파’에서부터 ‘좌파의 가면을 쓴 우파’까지 견해가 분분했다. 그러나 최근 저작으로 오면서 그는 점점 더 분명히 폭력과 전제적 공산주의에 동의를 표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21세기 공산주의 이론가(21st century communist theorists)’를 입력해 보라. 바디우와 지제크의 이름이 맨 위에 올라 있다.

나로 말하자면 지제크의 글은 늘 흥미롭게 읽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적으로 흥미로운 것도 현실적으로는 위험한 경우가 있다. 지식에도 ‘치명적 매력’이란 게 있나 보다. 특히 문학 예술 비평에서 시작해 정치나 윤리에 접근하는 경우가 그렇다. 지제크는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개의치 않고 행동한 마오쩌둥(毛澤東), 쿠바 위기 때 핵전쟁을 벌일 각오를 하고 준비한 체 게바라에게도 동조한다. 우리에게는 발등의 불인 북한 핵위협에 대해 그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지제크를 읽더라도 그의 정치적 본색은 제대로 알고 읽어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슬라보이 지제크#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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