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민주주의를 위한 이석기 제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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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왜 국회 자격심사를 통해 제명해야 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두 의원에게는 국민의 위임이 없기 때문이다. 의원 자격심사를 독일에서는 위임심사라고도 한다. 의원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는다. 그 위임이 있는지 심사한다고 해서 위임심사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이 아니라 정당의 비례대표 의원이다. 이 경우 위임은 유권자에서 정당으로, 정당에서 의원으로 두 단계의 위임 절차를 거친다. 첫 단계의 위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의 위임이 없었다면 전체적으로는 위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의원은 국민이 자기 손으로 직접 뽑지 않았다. 국민은 지난해 4·11총선을 통해 통진당에 6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을 뿐이다. 그러나 통진당은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위임을 배신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는 어떤 식으로든 이 분노에 답해야 하며 그것이 자격심사를 통한 제명이다.

이석기에겐 국민 위임이 없다

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 과정의 부정은 검찰 수사 이전에 먼저 통진당 내부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통진당은 자체 진상 조사를 벌여 스스로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속한 당권파는 진상조사 결과를 수용하길 거부했고 결국 당은 분열됐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통진당 부정 경선 관련자 462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소된 사람들 중에는 두 의원에 대한 부정투표 관련자들도 포함돼 있다. 두 의원이 기소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투표가 지우개로 지우듯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두 의원이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심사를 할 근거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위임’의 뜻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국회 자격심사는 두 의원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통진당에 부여한 위임을 배신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는 비례대표가 없다. 이 나라들은 지역구 의원만을 뽑기 때문에 어느 정당의 후보가 당내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후보가 됐는지는 원칙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 후보는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될 때 스스로 정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독일이나 우리나라처럼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는 사정이 다르다. 국민은 의원에게만이 아니라 정당에도 투표를 한다. 국민으로서는 자신들의 위임이 제대로 행사되는지 정당 내부에 어느 정도 간섭할 권한이 있다. 그래서 독일 헌법은 “정당의 내부 질서가 민주적 기본 원칙에 적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도 독일과 비슷하게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격심사는 비례대표제의 전제

비례대표제의 유지와 확대는 정당의 민주성이 확보된 위에서만 가능하다.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때 두 가지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나는 정당 자체에 대한 위임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위헌정당 해산이 그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가 아닌 한 그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정당이 아니라 개별 의원을 상대로 한 국회의 자격심사다. 이것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비례대표제, 나아가 민주주의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2004년 총선에서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례대표제 덕분이었다.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제가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세력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지 목도했다. 국회가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확대할 의사가 있다면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제명하는 단호함부터 보여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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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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