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사면초가를 듣고 있는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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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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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민주통합당은 작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진 것을 원통해한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이겨서 뭘 하려고? 다수당이 된다 한들 다수결 원칙을 배제한 지금의 국회법 아래서는 180석이 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국회의장 같은 자리는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소수당인 민주당은 지금도 자신들의 뜻대로 무엇을 할 수는 없지만 새누리당이 하려는 것은 얼마든지,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처럼.

정부조직 발목잡기는 실책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겼다 해도 마찬가지다. 가상의 문재인 대통령은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동의해 주지 않는 한 총리 임명도, 정부조직 개편도 뜻대로 할 수가 없다. 대선 때 문 후보는 ‘혁신경제로 신성장동력 확보’ ‘정보통신기술(ICT) 정책 총괄기구 설립’ 등 박근혜 후보와 비슷한 공약들을 내놓았다. 공약 실천을 위해 정부조직을 손질하려 해도 새누리당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면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이 다수당이고 새누리당이 소수당이라도 지금 같은 상황이면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

새 국회법은 이성과 합리, 타협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 다수당과 소수당 가운데 어느 쪽이든 이런 전제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국회는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새 국회법은 소수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정치에서 소수당 존중은 필요하다. 민주당도 늘 그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다수당 존중이다. 그것이 선거의 본질이자 민주주의의 원리다. 다수 존중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구태여 선거에서 이기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대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기에 허니문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금 4개의 전선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 하나는 당내 친노 주류와 비노 비주류 간의 계파 갈등이다. 대선 이후 잠복했던 고질병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덧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둘은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결이다. 여론은 점점 민주당에 불리해지고 있다. 셋은 안철수 세력과의 갈등이다.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전투가 첫 고비겠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다. 넷은 북한발(發) 국가위기 상황과의 싸움이다. 이럴 땐 통상 야당의 입지가 좁아지게 마련이다. 사방에서 초(楚)나라 노랫소리가 들리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국이다.

북한 변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는 모두 민주당이 자초한 일이다.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서는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이 잘 지적했다. “민주당의 역사 안에 체화되었던 포용과 소통의 정신이 어느 날 추방되고, 운동권 체질의 패권적 집단문화가 이식되면서 당이 심각한 내홍과 분열에 휩싸이게 됐다.” 박 대통령과의 기 싸움은 전략 미스다. 지금과 정반대로 새 정부의 출범을 화끈하게 돕는 통 큰 모습을 보였다면 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고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48% 넘어 52%도 바라봐야

안철수를 정치판에 끌어들인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국민에게 정치다운 정치, 수권정당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약점을 보였다. 안철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 민주당이 정부·여당과의 대립으로 정국을 경색시키지 않고 의원특권 내려놓기나 정치혁신 같은 새 정치에 앞장섰더라면 안철수가 다시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을 여지는 좁아졌을 것이다.

민주당은 작년 대선에서 48%를 이기고 52%를 졌다. 48%만 바라보는 정치 체질로는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 52%에도 눈길을 주는 과감한 변신이라야 희망의 돌파구를 찾고 미래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중대 결심’ 발언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소수 독재’의 유혹에 빠져 큰 정치를 외면한다면 민주당도 망하고, 종국엔 나라도 망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민주통합당#국회의원 총선거#정부조직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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