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카셀리나 지역에는 유명 패션 브랜드 구치의 본사가 있다. 그리고 이 본사 안에는 패션쇼에 올릴 샘플이나 VIP 고객이 주문한 맞춤식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공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19일 방문한 이곳은 공방 같은 느낌이었다. 석유나 화학약품 냄새 대신 가죽 냄새가 가득했고, 평범한 바늘을 손에 들고 한 땀 한 땀 제품을 완성해 가는 이탈리아 장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작업 환경 속에서 옛날 방식 그대로 손바느질을 고수하는 모습이 마치 시계를 뒤로 돌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핸드백 제작 과정을 시연한 실비아 씨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장인들의 평균 경력이 20∼25년인 이곳에서도 고참에 속하는 베테랑이다. 이날 기자 일행에게 그는 핸드백 위쪽 네 모퉁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튼튼한 실로 꿰매는 과정을 보여줬다. 두 겹 세 겹 겹쳐진 천을 가녀린 바늘 하나로 뚫느라 손에 힘을 잔뜩 준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다 바늘이 손가락을 스쳐 기어이 빨간 피 한 방울을 보고 말았는데도 “더 크게 다칠 때도 많은데…” 하며 쿨하게 웃어 보였다.
샘플제작팀에서 일하는 20여 명의 남녀 장인은 모두 손이 거칠었다. 가죽을 이어 붙이고, 핸드백 손잡이로 쓰일 대나무를 불에 그슬려 구부리는 등 손을 쓸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디테일한 작업에 집중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 진지해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긴장감 속에서도 장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구치 장학생’으로 선발돼 기자와 함께 핸드백 제작 현장을 방문한 패션 전공 한국 대학생들 역시 “이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우리나라 공장 직원들에 비해 표정이 밝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구치의 장인들은 높은 보수와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밝은 표정은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는 자신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자부심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듯했다.
구치뿐 아니라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주요 유명 브랜드들은 최근 부쩍 장인의 존재와 이들의 활약상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화려한 디자이너의 뒤에 가렸던 사람들에게 새롭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장인 마케팅’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좀 더 치열해졌다. 부자들조차도 품질과 내구성 등의 투자가치를 보다 깐깐히 따지게 됐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품질이 향상되면서 수출 길도 확대되고 있는 ‘K 패션’의 시대에 우리 패션 업계도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구치 샘플 공방의 장인들은 모두 피렌체 지역 출신이었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였고, 오랫동안 가죽 세공으로 이름을 알린 특별한 도시 피렌체에는 특별한 유전자가 대물림되는 것 같다고 이곳의 총괄책임자인 스테파노 씨는 말했다.
한국인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손재주와 집중력을 가진 민족이다. 이런 재주가 국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K 장인’이 제대로 대접 받고 파워를 키워가는 문화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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