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공기업 평가’를 평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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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학점-두번 연속 D학점 땐 기관장 해임
낙하산들, 전담부서 만들어 1년내내 시험준비
평가위원 줄대려고 컨설팅도 받아… 年1000억 낭비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일의 본말이 바뀌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대한 경영평가를 일컫는 표현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이 있을까.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은 ‘낙하산 인사’의 대명사.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전문성 없는 인물이 대통령이나 정권실세의 줄을 타고 공공기관에 내려오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기관 업무에 무지한 낙하산 인물들의 방만하고 무책임한 경영이란 고질병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고민 끝에 정부는 2007년 공공기관운용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기획재정부가 구성하는 100여 명의 평가단으로 하여금 해마다 공기업과 준공공기관의 경영평가를 하도록 한 것이다.

111개에 이르는 전국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3월부터 두 달간 실시되는 재정부 경영평가를 앞두고 초비상이다. 수개월간 준비한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면접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경영평가의 S, A, B, C, D, E등급 가운데 E를 받으면 기관장은 바로 해임이다. D를 받으면 성과급이 없으며 두 번 연속 D등급이면 자동 해임이다. 기관 평가 결과에 따라 직원들의 승진이나 성과급도 결정된다. 기관장 성과급이 억대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자리와 돈 모두가 경영평가 결과에 달려 있다. 공공기관이 경영평가에 목을 매는 이유이다. 기관장 등 전체 조직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긴장의 방향과 내용이 잘못됐다. 정작 기관이 해야 할 업무는 뒷전인 채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 긴장하는 것이다. 그 경영평가는 평가를 위한 평가가 된 지 오래다. 기관장이나 임원들은 “한마디로 보고서를 얼마나 그럴싸하게 번지르르하게 만드느냐, 면접 때 설명을 얼마나 매끄럽게 잘하느냐가 평가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낙하산을 타고 왔어도,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버젓이 살아남고 재임되는 기관장이 있는 것은 경영평가를 잘 받는 기술 덕분이다. 전문성을 외면한 인사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평가가 전문성 없이 이뤄지는 모순 탓이다. 한 기관장은 “재임 동안 나뿐 아니라 기관 전체가 평가 준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모든 기관이 1년 내내 많은 돈과 인력을 따로 들여 보고서를 잘 만드는 경영평가 준비에 매달리니 원래의 좋은 취지보다 부작용이 더 큰, 기둥보다 서까래가 훨씬 더 큰 상황이 되어 버렸다.

기관장 대부분은 취임하자마자 경영평가부터 챙긴다. 인력과 예산의 상당 부분을 두 달간의 평가를 위해 1년 내내 투입한다. 어느 공사의 경우 평가만을 담당하는 임원에다 부서 직원만 30여 명이다. 웬만한 기관은 7∼10명의 전담직원 외에 부서별 담당을 따로 둔다. 아예 보고서 작성 등에 전문성을 가진 직원을 채용하는 기관도 있다. 그림이나 도표 등이 많이 들어간 모양 좋은 보고서, 파워포인트 등 시각 효과가 좋은 발표를 하기 위해서다.

기관들은 매년 7월 초 경영평가가 발표되면 그 직후부터 다음 평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혁신성’ 점수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것. 새 사업 개발, 새 제도 도입이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조사나 자체 역량 평가 없이 책상머리에서 사업을 만든다. 그러니 기존 시장만 교란시킬 뿐 제대로 성과를 거두는 사업이 되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기관들의 또 다른 중요한 준비는 정보 수집이다. 대부분 독점화한 업무를 하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해마다 혁신을 통한 질적 양적 차별화를 가져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평가위원에 따라 평가 결과의 차이는 발생한다. 그러니 평가를 맡은 교수들의 전공 분야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입맛에 맞춘 평가보고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면접에 대비해 평가 교수들의 인맥을 파악해 사전에 접촉하는 것도 필수이다.

평가단은 20여 명씩 5개조로 나뉘어 기관을 평가한다. 평가위원들은 평가가 실시된 이래 거의 경영학 행정학 회계학 등 3개 전공 교수들과 연구기관 연구원들로만 구성되어 왔다. 조직과 사업의 경영성과와 효율성을 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 교통 건설 문화 언론 등 다양한 형태의 공공기관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 및 평가하는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공공기관의 임원은 “아예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리 찾아가 몇 시간 설명해야 기관의 업무를 약간 이해하는 평가위원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평가가 보고서와 면접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상당수 평가위원이 평가단장의 전공 분야 교수들로만 채워진다. 평가기준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관들은 자체 인력 외에 외부 컨설팅회사를 활용한다. 보고서 작성에 도움을 받는다고 하지만 평가 교수들과의 연결고리 등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기관은 적게는 2000만∼3000만 원에서 많게는 2억∼3억 원까지 들인다. 100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컨설팅 비용으로 지출된다. 이른바 ‘평가산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성격과 목적, 기능이 다른 기관에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는 경영평가 준비에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사실상 매몰되어 있다. 평가 준비를 하기 위해 본래 업무를 서슴없이 희생시킨다. 인력의 별도 운용과 컨설팅 등 평가 준비를 위해 100여 개 공공기관이 1000억 원이 훨씬 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각 기관은 감독부처보다는 경영평가를 주관하는 재정부의 눈치만 본다고 한다. 이 본말이 바뀐 문제를 재정부는 알고 있을까. 경영평가의 존재에만 가치를 두고 그것이 빚어내는 어처구니없는 부작용을 모르거나, 알고도 그대로 두고 있다면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러한 경영평가를 토대로 청와대가 인사를 했을 것이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경영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평가되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드러커도 한국에 이런 불합리한 평가가 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정부 공공기관 학계 등이 합작하는 경영평가의 부작용은 평가되어도 개선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새 정부는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고 장관들에게 인사권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작용투성이인 경영평가가 살아있는 한 장관들이 올바른 인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낙하산 인사#공기업#경영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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