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진영]개인 현금거래 자료를 국세청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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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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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영 경제부 기자
황진영 경제부 기자
금융위원회 산하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직원이 8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다. 금융위나 기획재정부 국장이 1급으로 승진해서 가는 FIU 원장의 관용차는 준중형인 ‘아반떼’다. 예산이 적어 중형차를 굴릴 형편이 안 된다는 게 FIU의 설명이다.

이 작은 조직이 보유한 정보를 놓고 금융위와 국세청 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FIU로 모이는 2000만 원 이상 고액 현금거래 내용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것은 국세청의 숙원사업이다. 국세청 관계자들은 “현금거래 내용을 손금 보듯이 들여다보면 세무조사의 효율성이 한결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FIU 자료를 통째로 보면 연간 4조 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며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하고 있다.

금융위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고, 다른 목적으로 쓰일 개연성이 있다”며 방어선을 치고 있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국세청에 유리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이 ‘복지 확대’이고, 세율 인상 없이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금 징수를 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기존 납세자의 소득, 재산, 신용카드 사용 내용 정보에 2000만 원 이상 현금거래 자료까지 쥐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를 두고 한국납세자연맹은 ‘빅 브러더에 개인정보가 완전 노출되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지금도 막강한 권력인 국세청이 개인의 금융정보까지 보유할 때 부작용이 작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과거 정치적 목적으로 세무사찰 등을 벌인 데서 생겨난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고액 현금거래 자료만 보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국세청의 주장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현동 청장이 취임한 뒤 국세청은 ‘해외의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域外) 탈세를 근절해 1조 원 이상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완구왕’ 박종완 씨, ‘구리왕’ 차용규 씨, ‘선박왕’ 권혁 씨 등이 국세청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국세청은 구리왕에게 1600억 원의 세금 추징을 결정했다가 ‘과세 전 적부심사’에서 패해 한 푼도 걷지 못했다. 세무조사가 발단이 돼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완구왕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한 선박왕에 대한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빅 브러더가 통치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이 일하는 기관의 이름은 ‘진실부(the Ministry of Truth)’다. 이 부처는 모든 국민의 정보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일을 맡는다. FIU의 현금거래 내용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국세청을 보며 ‘진실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국세청은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 선량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를 국세청이 샅샅이 들여다봐도 아무 문제없다고 느낄 정도로 신뢰를 얻었는지 국세청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
#금융위원회#금융정보분석원#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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