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명환]‘빈곤퇴치기금’ 한국역할 확대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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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부 교수
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부 교수
5년 전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질병과 빈곤 퇴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선 항공권에 소액의 기여금을 부과하는 ‘항공권연대기여금(국제빈곤퇴치기여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통해 모금되는 금액은 약 150억 원이며, 이 재원의 절반이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를 통해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퇴치 사업에 쓰이고 있다.

2006년 창립된 UNITAID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 3대 질병 퇴치를 위한 기구로 그 사업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더 나은 품질의 생명 구호 의약품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 시장 직접 개입 방식을 채택한 세계 최초의 보건의료기관이다. 둘째, 세계 최초로 도입한 소액의 항공권 부담금 제도를 통해 재원의 상당 부분을 마련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프랑스를 비롯한 9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UNITAID의 지난 5년간 출연금 총액은 1조6000억 원이며, 이 중 65%가 항공권 부담금을 통해 조달된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항공권연대기여금을 도입했으며, 국제선 항공권 1장당 1000원 정도를 후원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UNITAID 설립 이후 첫 5년간의 성과를 평가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 평가는 UNITAID가 질병 퇴치에 놀라운 기여를 하고 있음을 확인해 줬다. UNITAID는 의약품 구매자 역할을 해 제조업체들이 그간 외면했던 소아용 의약품 시장에 진출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소아환자 10명 중 7명이 지원받게 됐고, 약품가도 최대 80% 인하됐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시장 개입 전략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8월 우리 국회가 ‘국제빈곤퇴치기여금’ 제도를 2017년까지 연장하고 항공권연대기여금을 유지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필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여금 규모를 증액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 경제 규모와 향상된 국격에 비추어 볼 때 매년 75억 원은 그리 많지 않은 규모로 보인다. 더 적극적으로 세계 빈곤 퇴치에 앞장서는 아시아의 대표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매년 항공권기여금 150억 원 전액을 UNITAID에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국가들의 국제빈곤퇴치기금 지원 액수를 보면 프랑스는 매년 1600억 원, 영국은 920억 원, 국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도 210억 원을 출연하고 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프리카의 카메룬, 콩고, 말리 등도 오히려 국제빈곤퇴치기금 마련에 동참하고 있다.

항공권연대기여금 외에도 새로운 고통 없는 부담금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식, 채권, 파생상품 거래에 거의 부담이 안 되는 소액을 빈곤 감축에 할당하는 금융거래세를 부과하거나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자동차나 스마트폰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UNITAID는 유럽연합에서 주식 거래에 0.5%, 채권 거래에 1%, 파생상품 거래에 0.01%의 세금을 부과해서 142조 원의 국제빈곤퇴치기금을 마련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세계 최초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갖고, 아프리카의 질병 퇴치에 대한 한국의 기여와 UNITAID의 영향력에 주목해야 할 때다.

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부 교수
#개발도상국#WHO#UNIT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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