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현진]수컷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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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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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산업부 기자
김현진 산업부 기자
최근 만난 한 ‘강남 엄마’가 요즘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번지고 있다며 들려준 얘기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 매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남학생과 만년 전교 2등인 여학생이 있었다.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날 아침, 여학생은 남학생을 어디론가 이끌었다. 그러곤 남학생 앞에서 교복 치마를 홱 들어올렸다. 순진한 사춘기 남학생은 마음이 흔들려 시험을 망쳤고 여학생은 전교 1등이 됐다.

‘설마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누가 지어냈을까 불쾌하기까지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황당한 말이 대한민국 교육 1번지에서 회자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만큼 여학생은 더욱 영악해지고 남학생은 밀리고 있다는 의미인 듯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아들은 꽃미남으로 키우고, 딸은 공부시켜 입신양명하게 해야 한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도 퍼지고 있다. 공부로 승부를 걸지 못할 바에야 돈을 잘 버는 똑똑한 며느리를 들여 야무지게 살게 하는 게 아들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는 자조적 표현인 듯했다.

대한민국 결혼 시장의 대세는 여전히 예쁜 여자와 돈 잘 버는 남자다. 하지만 10년 뒤 결혼 시장에선 그 반대의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이미 그런 추세가 포착된다고 했다. 의사 신랑감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가 ‘얼굴 예쁜 부잣집 딸’에서 ‘웬만한 집안과 외모의 대기업 직원’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을 만큼 경쟁력 있는 아내를 얻으면 경제적으로나 2세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다.

지난해 미국의 칼럼니스트가 발간한 책 ‘남자의 종말’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여성들이 미국 대학을 장악하면서 미국 중산층은 아들보다는 딸의 성공 가능성에 기대를 더 걸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4만 년간 세상을 지배한 남자를 40년 전부터 여자가 밀어내면서 성(性)의 권력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화장품의 전체 성장률이 5.3%에 그친 반면 남성 화장품은 15%에 이르는 고공 성장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남성 뷰티 영역에선 기존의 성 정체성을 뛰어넘는 수준의 ‘진화’가 진행 중이다. 성격적으로도 남성의 특징으로 꼽혔던 마초적 성향은 배우자나 직장 동료로서 모두 ‘비호감’으로 통한다.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퇴화하면서 언젠가는 수컷이 멸종할 것이라는 일부 학자의 주장은 지난해 반대 이론이 발표되면서 수그러들었다. ‘수컷의 멸종’은 ‘암컷’으로서도 끔찍한 상상이다.

그러나 여성 주도 사회에선 좋든 싫든 ‘Y염색체의 변이’가 여성 취향에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에 진출한 여성이 남성 위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전통적인 ‘여성성’을 버리고 보이시한 유전자를 후천적으로 개발했듯 말이다. ‘종말론’ 대신 ‘진화론’을 택한 수컷성의 변이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

김현진 산업부 기자
#결혼#강남 엄마#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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