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중국과 한국의 ‘건국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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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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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작년 말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하방(下放)되어 갔던 산시(陝西) 성에 취재 갔을 때 옌안(延安)에 들렀다. 옌안은 마오쩌둥(毛澤東)의 홍군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군대의 추격을 피해 약 9600km의 대장정 끝에 도착한 혁명 근거지다.

그곳 옌안혁명기념관에는 마오가 베이징(北京)대 도서관 사서에서 공산혁명의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선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공산당 최고 교육기관인 당교(黨校)에서 온 젊은 당원들은 마오의 사진 앞에서 공산당가(黨歌)를 불렀다. 얼굴에는 신념과 자긍심이 가득했다.

당시는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당장(黨章)에서 마오주의를 삭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부 반중(反中)매체에서 나왔을 때다. 하지만 공산당 지도부는 선거 없이 권력을 넘겨받는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마오의 혁명과 건국에 의지하고 있다. 일반 국민의 마오에 대한 존경도 여전히 높다. 일부에서는 신앙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공산당은 마오를 맨 밑에 두고 그 위로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그리고 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사상과 이념 등을 층층이 쌓고 정치의 거울로 삼는다.

마오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대약진 운동을 통해 수천만 명이 희생됐고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현대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개혁 개방으로 중국을 이끈 덩샤오핑은 톈안먼(天安門) 시위를 군대를 동원해 유혈 진압했다.

중국에서 지도자들의 공과(功過)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행적에 대해 재평가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면적인 부정은 없다. 과거를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자산으로 삼고 모두 안고 간다. 중국식 자본주의와 공산당 독재정치가 가진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안정 속에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중국 정치가 가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과거와 지도자가 부정되고 현재도 부정된다. 건국도 부정된다. 어쩌다 불거지는 좌우 논쟁의 근저에는 이승만의 건국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자리하고 있다.

대선 때 여야 후보 모두 통합을 외쳤지만 건국과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건국에 대한 해석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역사를 어떻게 보듬을지에 대한 고려 없이 상대 진영의 몇몇만 데려오는 게 진정한 통합일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철저한 전범 처리에 나선 독일에 비해 우리의 일제 청산이 덜 되었다고 전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통째로 부정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과거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쟁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애국가를 부를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거나 대선후보가 개발 독재를 하면서 근대화를 이룬 아버지 대통령을 부정해야 할 정도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승만은 이승만, 박정희는 박정희, 노무현은 노무현대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차기, 차차기 대선에서도 큰 희망이 없는 통합 타령을 되풀이해야 할지 모른다.

변변한 건국기념관 하나 없는 한국에서 건국과 그 이후의 역사를 껴안자고 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대통령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지금이 바로 역사를 부정하고 등 돌리기보다 눈을 맞출 수 있는 기회다.

시진핑 총서기는 마오 사상을 딛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등에 업은 채 또 다른 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중국에 비해 뒤질 게 없는 현대사를 가진 한국과 한국의 지도자는 과거의 역사에서 무엇을 끄집어내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중국#시진핑#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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