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정미경]선거 공약과 대통령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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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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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인 친구 집에 갔다가 서랍 속에 있는 권총을 보고 화들짝 놀란 기억이 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물론 장전되지 않은 총이었지만 기분은 묘했다.

친구는 우범 지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코앞에 총을 들이댄 강도에게 당한 경험을 얘기했다. 다행스럽게 돈만 털리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날 어떻게 집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총을 사야겠다는 생각만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는 여러 현안에서 진보적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기 규제만큼은 “헌법이 부여한 총기 소유의 권리”를 주장하며 강력 반대했다. 법적 보장 여부는 제쳐두고 ‘내 목숨은 내가 지킨다’는 생존의 문제인 만큼 총기 규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했다. 당시 총기 규제가 제3자의 정치적 잣대로는 재단하기 힘든 복잡한 이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코네티컷 주 뉴타운 총기 참사 후 총기 규제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미국을 달구고 있다. 총기 규제는 총기 참사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다. 재정절벽 위기 속에서도 연일 미국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국론을 가르는 쟁점이 등장했을 때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뉴타운 참사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총기 규제 행보는 확고하다. 사건 후 일주일 동안 백악관 기자회견, 현지 방문, 추모회 연설, 전담 태스크포스 가동 등 큰 뉴스를 쉬지 않고 터뜨리며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드는 화두는 총기 규제였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 4년 동안 오바마의 정책 어젠다에서 총기 문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2008년 대선 캠페인 때 ‘집권하면 총기 규제 정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에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규제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점치고 있다. 1기 때와는 달리 총기 규제, 동성 결혼, 낙태, 이민 등 ‘사회 가치’ 현안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문제들은 오바마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준 지지층이 대선 기간 공론화를 요구해온 현안인 동시에 대통령 자신이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첨예한 이념 갈등이 수반된다. 1기 때 공화당과의 타협에 치중하느라 이런 ‘뜨거운 감자’들을 피했다면 안정된 권력을 확보한 2기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좀더 분명히 드러내는 정책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경기침체와 재정위기, 외부적으로 중국의 부상과 중동 지역 혼란 등 현안이 산적한 오바마 행정부가 이 문제들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이 적절한지에는 회의론이 많다. 총기 규제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쉽게 결론을 내기 힘든 데다 다른 발등의 불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며 “선거 후 지지자들에 대한 보답도 중요하고 캠페인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뢰도 중요하지만 냉정하게 정책의 중요도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캠페인 공약 100% 실천’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총체적으로 판단해 시기를 조정할 것은 조정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결단성을 보여주기를 바랄 것이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선거 공약#대통령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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