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中日 정부, 한국 법원의 독립적 ‘류창 결정’ 존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중국과 일본이 각각 신병 인도(引渡)를 요구한 중국인 류창이 중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서울고법은 어제 류창의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 방화가 ‘상대적 정치범죄’에 해당한다며 일본의 인도청구를 거부했다. 류창은 2011년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 신문(神門) 기둥에 불을 질러 신문 일부를 훼손했다. 법원은 류창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인정된다며 한일 범죄인인도조약상 인도거절 사유인 ‘정치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야스쿠니 방화 직후 서울로 이동한 류창은 2012년 1월 6일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지다 경찰에 붙잡혀 징역 10개월의 형을 받아 복역한 후 출소했다.

류창의 한국인 외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중국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그의 할아버지도 일본군에 맞서 항일투쟁을 하다 전사해 1983년 중국 정부로부터 혁명열사 칭호를 받았다. 류창의 어머니는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일제에 탄압받은 가족사를 눈물로 증언했다. 류창은 일제강점기 박해를 받은 조상의 후손으로서 우경화(右傾化) 정책을 펼치며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일본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방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류창의 처리는 한중일의 역사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지난한 숙제였다. 중국과 일본은 그동안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류창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일본은 지난해 5월 한일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인도청구를 했다. 어제 고법의 판단은 한국의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다. 한국 정부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국 사법부의 판단이 중국이나 일본의 요구나 압력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중국과 일본 정부가 자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듯 양국도 한국 사법부의 결정에 승복해야 할 것이다.

어제가 신년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일본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인터넷 포털에는 “중국, 한국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류창이 중국에 돌아가면 국민적 영웅으로 표창받겠지” 등 한국 법원의 결정을 비난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그에 반해 중국에서는 예상대로 류창을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반 국민의 감정까지 통제하기는 어렵겠지만 중-일 정부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정치범을 보호하는 것은 현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일본은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은 국가 사이에도 정치적 범죄는 인도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도 일본을 자극하는 대응을 삼가야 할 것이다. 한중일의 외교 관계가 이 사건으로 손상돼서는 안 된다.
#한국 법원#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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