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록]검찰이 살아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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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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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록 사회부 차장
이상록 사회부 차장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막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어요. 받자마자 부장님 고함소리가 들렸죠.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는 바로 차를 돌렸습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월말 사건 처리로 정신없이 바쁘던 어느 금요일 저녁, 그는 평소보다 빨리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부인의 암 소식 때문이었다. 눈물을 닦으며 차를 돌리던 그때, 부인은 수술대에 누웠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다며 그는 소주를 들이켰다. 몇 년 전 만났던 지방의 한 검찰청 형사부 검사의 얘기다.

“거악(巨惡) 척결이니, 정치인 수사니 하는 건 딴 나라 이야기죠. 형사부 검사에게 일은 그냥 현실입니다. 고소 고발 사건 관련자들과 하루 종일 씨름하다 어느새 월말이 오면 밀린 사건 처리하느라 허덕이는 게 일상이에요.” 그에게서 검사의 자부심이나 부정 부패 척결 같은 단어를 떠올리긴 어려웠다. 지친 회사원의 모습만 보였다.

숫자로만 보면 형사부 검사는 검찰에서 ‘압도적 다수’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선 지방검찰청의 수사부서는 보통 4, 5개의 형사부와 공안부, 특수부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도 형사부 검사는 주류가 아니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대기업 총수를 수사하고 단죄하는 공안·특수부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때렸는지, 물건은 누가 훔쳤는지 수사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검찰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선택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 어차피 특수부, 공안부 뒤치다꺼리나 하는 역할이라며 스스로 냉소하는 형사부 검사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 쪽에서 보면 상황이 다르다. 일반인이 형사사건에 연루돼 검찰청에 간다면 특수부나 공안부가 아닌 형사부 검사를 만날 개연성이 더 크다. 형사부의 작고 평범한 사건이 당사자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일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에게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검찰청에서의 기억’은 국민이 검찰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된다.

지난해 잇따른 검사 비리와 성추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문제를 둘러싼 검찰 항명 파동이 이어지면서 검찰 개혁은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박 당선인도 이미 강력한 검찰 개혁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검찰 간부들은 하나같이 ‘국민 신뢰 회복’을 외치며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남은 건 어떻게 신뢰를 되찾느냐 하는 것이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형 사건 몇 개 멋지게 한다고 국민 신뢰가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형사부에 유능한 검사를 보내고 제도적으로도 지원해 형사부를 강화해야 검찰이 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역시 검사 경력 대부분을 공안부와 특수부에서 보낸 엘리트 검사였다. 변호사가 돼서야 형사부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했다. 검찰이 이런 ‘뒤늦은 깨달음’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직 이기주의를 버리고 국민의 시각에서 변해야만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이상록 사회부 차장 myzodan@donga.com
#검찰#검사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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