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목일]손으로 쓴 종이편지가 그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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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10년 전과 요즘, 편지를 받는 사람의 표정을 비교하는 두 컷 만화를 본 적 있다. 과거엔 편지를 받은 사람을 보고 옆 사람이 부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현재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시대에 따라 편지를 두고 짓는 감정의 표현이 다른 셈이다. 종이편지가 e메일이나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에 밀려나면서 거리의 붉은 우체통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간단히 주고받는 e메일은 몇 초 만에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전달되고 배달 사고가 날 염려도 없다. 우표도 필요 없다. 수신확인도 가능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신속하고 편리한 소통 혁명이 이뤄진 것이다. 그 덕분에 현대인은 이 거대한 소통체계 속에 편승해 휴대전화나 아이패드 등 통신 기구를 휴대하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통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계가 소원해지고 단절되기도 한다. 외출이나 여행 중에 통신기구를 휴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당혹감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어느새 이런 기기들의 지배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소셜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는 소통방법은 앞으로 어떻게 확대될지 알 수 없다. 속도가 빠르고 시간적·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을뿐더러 사용방법도 간단하고, 비용도 무료이거나 저렴하다.

그러나 과거 손으로 종이에 편지를 쓰고 주고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이편지의 감성을 그리워하면서 1년에 몇 통의 편지라도 받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종이편지엔 감성과 그리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e메일은 알림, 공지사항, 업무 연락, 전보의 기능을 대행하면서 시간성, 경제성, 소통성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하지만 정서, 진실, 교감, 애정을 교환하기엔 적당하지 않다. 정보 소통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며 사색과 고민과 감회를 교환하기엔 부적당하다.

많은 현대인들은 이제 종이편지, 즉 육필편지를 전시대 유물인 양 여기고 있지만 그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과거 한 통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했던가. 밤을 새우면서, 몇 장의 편지지를 버려 가며, 한 자 한 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곤 했던가. 유명 인사들의 육필편지는 사후 경매에서 고가로 낙찰돼 화제가 되곤 한다. 그 편지 한 장에는 편지를 쓴 이의 사상과 감성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연애편지 한 통을 쓰기 위해 가슴 설레며 많은 시집과 수필집을 읽었던 사춘기의 경험을, 오늘날의 휴대전화 문자를 애용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마음이 녹아 있는 글씨와 한 줄의 문장에서 진실한 감정이 느껴져 감동을 주는 육필편지를 나눠 본 게 언제였던가.

휴대전화 문자는 일회성 일과성의 전달, 알림, 소통에 불과하다. 언어의 압축화가 이뤄지고 문장은 점점 짧아지다 보니 감동이 부족하다. 수시로 오가는 e메일은 일상의 정보 교환처럼 느껴진다.

자식을 서울로 유학 보낸 부모가 자식들에게 전화나 문자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굳이 편지를 보내는 것은 깊은 감정의 교류와 생생한 삶의 표정과 심경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교감을 위해 1년에 몇 통이라도 소중한 사람에게 정성스러운 육필편지를 써 보면 어떨까. 교감과 사색의 힘을 느끼는 것은 물론 삶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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