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진영]저금리보다 더 큰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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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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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영 경제부 기자
황진영 경제부 기자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보험회사 연쇄 도산 사태가 벌어졌다. 1997년 당시 일본 보험업계 13위였던 닛산생명을 시작으로 도호생명, 지요다생명, 교에이생명 등 10위권 안팎에 머물던 보험사 9개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들은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개인연금 저축성보험 등을 판매하며 덩치를 키우다 일본 정부가 기준금리를 0%대로 떨어뜨리자 날개 없는 추락을 했다. 수입이 줄었지만 가입자에게 약속한 높은 이율의 보상은 지속해야 했고, 이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저금리시대에 접어든 국내 보험업계에는 최근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객의 보험료를 받아 운영하다 20∼30년 뒤 되돌려주는 보험사에 저금리는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다. 벤치마킹 대상이던 일본 보험사들이 ‘저금리 덫’에 걸려 좌초한 것을 본 국내 보험회사들이 공포에 떠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보험사는 현재 저금리보다 더 큰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고객의 신뢰 저하다. 이를 보여주는 게 급락하는 판매실적이다. 주력 판매상품이던 변액보험이 전성기 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금저축보험도 금융감독원이 올해 10월 수익률을 공개하자 저조한 실적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판매량이 전달보다 30%가량 감소했다.

보험사의 수익률 하락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보험료에서 떼는 과도한 사업비다. 일반적으로 국내 보험사들은 보험가입 후 7년 정도 보험료의 10∼20%를 사업비 명목으로 뗀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보험설계사의 수당이다. 이는 이직이 잦은 보험설계사들을 붙잡기 위한 유인책이다.

과도한 수당이 고객의 신뢰를 무너뜨려 기업을 추락으로 이끈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게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으로, 파산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보험설계사들에게 지급된 수당과 유사한 인센티브가 등장한다. 매킨지 컨설턴트였던 제프 스킬링은 엔론이 영입을 제의하자 독특한 인센티브 방식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신규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시작하는 시점에 미래이익을 산정한 뒤 총이익의 9%를 보너스로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약은 5∼10년짜리 장기인 데다 가격 변동성이 커 미래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검증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엔론은 이를 받아들였고 불행은 시작됐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스킬링은 이익을 부풀렸고, 이를 토대로 막대한 보너스를 챙겼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선수당 지급 제도가 엔론의 보상제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보험회사가 신규 계약 체결 직후 고객이 앞으로 낼 보험료 수입을 근거로 보험설계사 수당을 미리 지급하는 게 스킬링이 제시한 인센티브 지급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고객들에게 수익률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점도 신뢰도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수익률에 대한 설명도 부실하다. 보험료 10만 원에서 사업비로 1만 원을 떼고 9만 원을 굴려서 9만9000원이 되면 보험사는 10% 수익이 냈다고 설명한다. 모 보험사 광고카피처럼 “보험은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을 보험사들이 악용한 것이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받아 운영한다. 가입자가 줄어 납입 보험료가 줄면 이익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보험사의 이익이 감소하면 보험가입자에게도 좋을 게 없다. 저금리에 대한 걱정은 돈이 들어온 다음의 문제다. 보험회사들이 저금리에 대한 대책만큼 고객신뢰 회복 방안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
#저금리#보험사#보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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