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론조사 단일화, 제비뽑기보다 나을 게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간의 단일화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의 재방송처럼 흘러가고 있다. 후보들이 직접 담판에 뛰어든 것이나 여론조사를 앞두고 한 차례 TV 토론을 벌인 형식도 비슷하다. 10년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양측이 단일화 시한으로 약속한 후보 등록일(11월 25, 26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여론조사 방식을 합의하지 못한 채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두 후보가 단일화를 두고 강조했던 ‘감동 있는’ ‘아름다운’ 등의 수사(修辭)가 공허해졌다.

무엇보다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는 어떤 방식을 취하든 과학적 정합성이 없다.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의 신뢰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조사에 오류가 있더라도 수정하거나 검증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책임자는 “여론조사로 단일화하는 것은 뺑뺑이 돌리기와 비슷하다. 통계학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게임”이라고 비판했다.

오차범위가 ±2.5%라면 5%포인트 차이까지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 여론조사에 대한 통계학적 해석이다. 52.5%를 얻은 쪽이 47.5%를 얻은 쪽보다 앞선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하물며 두 후보 가운데 0.1%포인트라도 앞선 사람을 승자로 한다는 것은 가위바위보나 동전 던지기로 승패를 가리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선택이다.

2002년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때 그런 방식을 채택한 것이 애당초 잘못이었다. ‘새 정치’를 외치는 안 후보가 여론조사 단일화에 동의한 것은 자기 부정(否定)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요일이나 시간대, 집 전화와 휴대전화의 반영 비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질문에 후보의 이름만 표기할 때, 이름 뒤에 후보라는 단어를 붙일 때도 각각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부족해 여론조사 방법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국가 대사(大事)에 걸맞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100만 명의 국민선거인단이 참여한 경선을 통해 공당(公黨)의 대표 주자로 선출된 문 후보가 기껏 몇천 명의 여론조사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겨룬다는 것은 정당정치를 희화화(戱畵化)하는 일이다. 민의를 왜곡하는 ‘단일화 쇼’를 종식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새 정치이자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여론조사 단일화#문재인#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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