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윤종]“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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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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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유윤종 문화부장
이번 주 음악 애호가들의 최대 화제는 지휘명장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내한공연이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네 곡으로 꾸민 20, 21일 연주는 “밝고 유려하고 따스한, 모든 파트가 생생하게 살아 숨쉰”(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 연주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양한 감상기를 읽으며 베토벤 교향곡들의 남다른 생성사가 떠올랐다.

베토벤 ‘합창’서 인류의 하나됨 강조

20일 공연한 교향곡 3번 ‘영웅’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작곡했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했다는 말을 들은 베토벤은 분노하며 헌정사를 적은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설의 진위는 분명치 않지만 베토벤이 청년기에 ‘라인 강 서쪽’ 프랑스에서 불어오던 개혁의 바람에 깊이 공감했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기 작가가 동의하고 있다.

21일 연주된 교향곡 7번은 ‘영웅’으로부터 8년 뒤 발표됐다. 이 곡의 초연 기록은 읽는 사람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든다. 살리에리, 후멜, 마이어베어, 슈포어, 줄리아니, 드라고네티 등 쟁쟁한 작곡가들이 6명이나 단원으로 연주에 참여했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이 콘서트가 대(對)프랑스 전쟁 상이용사들의 보훈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오스트리아의 국가적 이벤트였던 데 있다. 반(反)프랑스의 기치를 드높인 이 행사의 주역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친(親)프랑스적 진보주의에서 애국주의로. 베토벤의 진심은 어느 쪽이었을까. 그 향방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에서 찾을 수 있다. 베토벤은 끝악장 합창 부분에 사용할 가사로 문호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선택했다. 송가를 등장시키기 전, 베토벤은 1악장의 혼돈, 2악장의 광란, 3악장의 현실 도피적 악상을 차례로 회상한 뒤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베이스 솔로가 부르도록 한다.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뒤이어 실러의 송가가 흐른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너의 마법은 관습이 엄하게 갈라놓았던 것을 다시 결합하도다. 너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모든 인류는 형제가 되도다.” 이 가사에서 보듯 베토벤의 ‘진정한 목소리’는 관습의 장벽을 넘어선 인류의 하나 됨이었던 것이다.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는 ‘데미안’으로 친숙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하다.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베토벤을 인용해 이 에세이를 발표했다. 각 나라가 편협한 민족주의에 눈멀어 반목하고 살육하는 현실을 지탄한 글이었다. 이 글 때문에 그는 독일 문단과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스위스로 이주해야만 했다.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은 30여 년이 지나 히틀러의 제3제국이 패망한 뒤에 이르러서였다.

역사시계 되돌리는 日, 새겨들어야

실러에서 베토벤, 헤세로 이어지는 위대한 정신의 궤적을 되밟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자민당 총재가 21일 발표한 총선 공약을 떠올린다. 그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의 날’을 정부 행사로 승격시키겠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둘러싼 주장에 대해 반론하겠단다. 과거사 반성 등의 교육은 금지한다고 했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는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합창 교향곡 2악장의 소란한 음향이 들리는 듯하다.

한국도 일본도 연말이면 ‘합창 교향곡’ 연주가 성시를 이룬다. 단, 일본에는 한국과 다른 전통이 있다. 지역마다 체육관에서 주민 수천, 수만 명이 악보를 들고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시민참여형 ‘합창 교향곡’ 연주가 수십 년째 연말마다 인기를 끌어온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을 숭앙하는 일본의 성숙한 시민들에게 아베 총재의 공약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호소할 때가 바로 지금인 듯싶다.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베토벤#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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